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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서산 보원사터 오층석탑」 국보 지정 예고

「예천 개심사터 오층석탑」도 함께
보원사지 석탑, 통일신라 조각양식ㆍ조영기법 계승과 고려 석탑 특징의 오층석탑
개심사터 석탑, 조성 목적과 시기, 조성 과정 담은 190자 명문이 새겨진 고려 석탑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서산 보원사터 오층석탑(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과 「예천 개심사터 오층석탑(禮泉 開心寺址 五層石塔)」을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하였다.

* 서산 보원사터(1987년 사적 지정):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법인국사 탄문이 거주하면서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고, 사터 안에는 보원사터 석조(보물), 당간지주(보물), 법인국사보승탑(보물) 등 문화유산이 있음.

* 예천 개심사터: 개심사에 대한 창건과 연혁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됨.

 

「서산 보원사터 오층석탑」은 석탑 자체의 건립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으나, 탄문(坦文, 900~974년)이 보원사에 있을 때 고려 광종을 위하여 봄에 불탑과 불상을 조성했다는 「서산 보원사터 법인국사탑비」의 비문과 함께 석탑의 조영기법, 양식을 고려하였을 때 고려 광종 때인 10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석탑 조성시기를 알 수 있는 편년(編年) 기준이 되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 편년: 석탑의 건립연대 순서와 양식적 특징의 기준이 되는 연대기

 

 

기단부는 위아래로 2층의 가구식 기단을 구성하였고, 부조(浮彫) 조각기법으로 아래층 기단 면에는 형상이 다른 사자상(獅子像)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고, 위층 기단 면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유려하게 조각하여 통일신라의 조각양식과 수법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도 잘 표현하고 있다.

* 부조: 평면에 그림이나 글자를 도드라지게 새김

* 사자상: 불법과 사리를 지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상징

* 팔부중상: 불교의 여덟 수호신(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을 형상화한 것으로 탑이나, 본존불 주위 사방(四方)에 배치함.

 

5층으로 구성된 석탑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일정한 체감(遞減)을 주어 안정된 구도와 외관을 형성하고 있다. 1층 탑신(塔身, 석탑의 몸통)의 각 면에만 문비(門扉, 탑신석에 조각한 문짝)가 새겨져 있고, 나머지 탑신에는 기둥 형상의 조각이 부조되어 있다. 옥개석(屋蓋石, 탑신석 위에 지붕모양으로 덮은 부재)은 아래에 4단의 옥개받침을 낮게 조각하였고, 좌우 너비에 비하여 높이가 낮아 통일신라의 석탑에서 보이는 양상과는 달리 고려시대에서 새로 등장한 치석(돌을 다듬음) 수법과 외관을 보인다.

* 체감: 여러 층으로 구성된 탑의 각 부재가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정도

 

「서산 보원사터 오층석탑」은 비교적 명확한 조성시기와 함께 고려왕실과 불교와의 관계를 알 수 있고, 통일신라 말기 조영기법과 양식을 계승하면서 고려시대 새로운 기법들이 적용된 석탑으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

 

「예천 개심사터 오층석탑」은 1011년(고려, 현종 2년)에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으로, 석탑에 새겨진 190자의 명문(銘文)*이 있어 구체적인 건립시기와 과정, 당시 사회상 등을 알 수 있어 학술적 값어치가 크고, 「서산 보원사터 오층석탑」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석탑 조성시기의 편년(編年) 기준이 된다.

* ‘1010년 이 탑의 건립공사에 착수하여 2월 1일에 돌을 깎기 시작하였고, 또 3월 3일부터는 광군사(光軍司)의 육대차(六隊車)와 소 1,000마리, 승려와 속인 10,000명이 힘을 모아 세웠으며, 향도와 공인 등 50여 명이 감독하였다. 그리하여 다음 해인 1011년 4월 8일에 완공하였다.’

 

 

기단부는 2층의 가구식 기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층 기단에는 각 면마다 3개의 안상(眼象)*을 배치하고 안상 안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하였고, 위층 기단 면에는 각 면마다 2구씩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조각하였는데, 이는 1층 탑신의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의 배치와 함께 다른 석탑에서는 유사성을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방식이며, 복식이나 지물 또한 특이하여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 안상: 석재 표면에 곡선으로 조각한 무늬

* 금강역사상: 악의 무리가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수문장 역할의 보살

 

5층의 석탑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안정감 있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각 탑신의 모서리에는 기둥 형상이 새겨져 있고, 옥개석은 하부에 4단의 옥개받침과 처마면 끝에 물끊기 홈을 조각하였다.

* 물끊기 홈: 우천 등으로 발생하는 물이 탑신부 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파둔 홈

 

「예천 개심사지터 오층석탑」은 석탑에 새겨진 명문으로 건립 목적과 과정, 시기 등을 명확히 알 수 있고, 아래층 기단에서 1층 탑신까지 십이지상-팔부중상-금강역사상을 부조 방식으로 조각하여 불교 교리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등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값어치가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