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4살 남장 소녀 금원의 금강산 여행기를 보면 문득 문득 그 묘사력과 관찰, 그리고 인문적 소양에 놀라게 된다. 1830년 곧 지금으로부터 195년 전 그녀가 기록한 금강선의 봄날 정경이다.
길을 돌아 수미탑으로 갔다. 수미봉 아래에 있는 탑은 마치 흰 비단과 검은 비단을 하나하나 쌓아서 허공중에 높이 꽂아놓은 것 같다. 앞에는 고르고 판판한 바위 위로 폭포수가 흐르고 얼음과 눈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정양사(正陽寺, 내금강 표훈사 북쪽에 있는 절)에 도착해 혈성루에 오른다. 이는 절의 문루(門樓)인데 내산의 진면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이고 가로막는 게 없으니, 만이천봉이 뚜렷이 눈 아래 펼쳐져 있다. 어떤 것은 흰 눈을 쌓아놓은 것 같고, 어떤 것은 부처가 앉아 있는 것 같고, 어떤 것은 머리를 올려 꾸민 것 같고, 어떤 것은 칼로 뚫어 놓은 것 같고, 어떤 것은 연꽃 송이 같고, 어떤 것은 파초잎 같은데, 하나는 손을 맞잡고 또 하나는 절을 하고, 하나는 옆으로 또 하나는 위로, 일어서기도 하고 웅크리기고 있기도 하고 그 천만 가지 모습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남쪽은 장경봉, 관음봉 아래 지장봉, 석가봉이고, 동쪽과 남쪽 사이 위쪽은 지장봉, 백마봉, 십왕봉, 솔리봉, 차일봉이고, 서쪽은 망고대, 미륵봉, 혈망봉, 석응봉이고, 석응봉 아래 은장암, 백마봉 아래 영원동이 있다. 그 아래에 나란히 솟은 것은 모두 오신봉이라 부른다. 동북쪽의 여러 봉우리는 모두 중향성으로, 단풍절이 되어 저녁 햇빛을 반사하면 붉은 비단 장막이 병풍 사이로 눈부시게 비치는 듯한 광경이 더욱 절묘하다고 한다.
중향봉 서쪽은 영랑첨, 수미봉 동쪽은 곤로봉으로 이들은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또 가섭봉이 있고, 낮은 것은 사자봉이다. 중향성 아래에는 백운대, 백운암, 만회암이 있다. 사자봉 밖으로 뻗은 줄기가 대향로봉, 소향로봉이 되고, 그 서쪽에 청학대가 있다.
어느새 붉은 해가 아침 안개 사이에서 은은하게 솟아오른다. 날씨가 맑고 깨끗해서 마치 가을 달이 강물에 비치는 것 같다. 은빛 벽과 옥 떨기가 밝고 아름답게 빛나니 … 난새와 봉황, 기린을 보지는 못했지만,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이 좌우에 있다. 마치 진짜 신선이 봉래산과 영주산을 밟은 것 같다. 문득 몸과 마음이 맑아져 나도 모르게 탄식하며 붓을 들어 시를 쓴다.
혈성루 아름다운 골짜기 가운데 있어
산문 들어서자 그림 같은 숲 펼쳐지네
아름다운 경치 천만 가지로 빼어난 곳
저 많은 연꽃 어스름에 아리땁구나
절에는 설악대사라는 노승이 앉아서 경문을 외고 있다. 나이가 아흔일곱 살로 밥을 먹지 않고 솔잎 죽을 먹은 지 삼 년째라고 한다. 탈속한 모습이 신선이나 부처 같다.
(출처: 김경미 엮고 옮김, 《여성, 오래된 여행을 꿈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