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김일성이 뭐라고 한마디 하면 북한은 찬양하기에 급급해한다. ‘아니요.’라고 말할 자유가 없을 뿐 아니라 침묵도 허용되지 않는다. 남한에서는 어떠한가. 역시 자유가 없다. 김일성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흔들지 않으면 사상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욕설에 가까운 반대부터 해야 한다. ‘고려연방제’만 해도 그렇다, 그 내용을 알아보는 것 자체가 위험스러운 일이다. 김일성이 “쌀밥이 역시 최고야”라고 강조했다고 치자. 북한 주민들은 ‘보리밥이 더 맛있어’라고 말할 자유가 없어진다, 남한 사람들도 자유가 제약받기는 마찬가지이다. ‘나는 쌀밥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사정이 이러하니 분단체제 아래에서는 북이나 남이나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다. 김일성이 김옥균을 높였을 때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북한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다. 맹목적인 교조주의에 빠진다. 남한 학자들도 불편해진다. 가만히 있으면 김일성에게 동조한다고 의심받을까 봐 께름칙하지 않을까? 물론 오늘날 한국 학자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학문의 자유가 상당히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김일성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김옥균은 1894년 3월 상하이에서 홍종우가 쏜 총탄에 쓰러졌다. 그 순간에도 그의 가슴 속에는 호방한 기백과 결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상하이행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일본 청년 미야자키 토오텐(宮﨑滔天)이 김옥균에게 상하이행의 위함성을 걱정하면서 동행하겠다고 하자 김옥균은 이렇게 말한다. “호랑이 소굴에 들어가지 않고서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는 없다. 청나라 이홍장은 나를 속이려 할 것이지만 나 또한 놈을 속이려고 배를 탄다. 그를 만나 내가 곧바로 죽임을 당하든가 감금되어 버린다면 만사 끝나버리겠지만, 5분이라도 담화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여하튼 문제는 한 달 안에 결판날 것이다. …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내도록 하자. 오늘 밤 어찌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이 글은 미야자키 토오텐의 자서전에 들어 있다고 한다. 김옥균은 이홍장과 담판하러 호랑이 굴로 향했다. 호랑이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일까? 아시아의 나아갈 바에 대한 자신의 구상, 이름하여 ‘삼화주의(三和主義)’였다. 조선ㆍ중국ㆍ일본의 세 나라가 구미열강의 식민제국주의로부터 자주독립을 지키고 발전하기 위하여 상호 연대협력 하자는 것이다. 그는 물론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K-민주주의의 원년, 이 특별한 해에 잘 호응하는 책 권태면의 《가지 못한 길》이 나왔다. 이 책 《가지 못한 길》의 마지막 구절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길을 간다. 민족의 역사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흘러간다.” 이 책을 낸 권태면은 외무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엘리트 외교관이다. 그는 높은 관직에의 욕망보다는 지식인의 고뇌를 품고 살아온 서생 외교관이다. 그동안 그가 썼던 책을 보아서 그렇다. 《밖에서 바라본 한국》은 한국의 사회문화를 내부자와 외부자의 두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 역사 속의 외교관》은 신라 이래 우리 역사에서 외교활동을 한 인물들을 탐사한다. 《북한에서 바라본 북한》은 그가 업무상 북한에 살면서 쓴 체험적 관찰기이다. 《구별연습》은 그의 시를 엮은 시집이다. 나는 그의 외교부 동료이자 애독자다. 이번에 나온 《가지 못한 길》은 분단체제 속에서 고뇌하는 한 외교관이 오랜 숙려 끝에 세상에 내놓은 노작(勞作)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소위 외교관으로 35년을 살았다. 그것은 늘 세계지도를 옆에 두고 보면서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 보는 직업이었다. … 수십년간 남북의 외교관들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