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난밤의 천안 주막은 크고 깨끗한 편이었다. 오늘 아침은 날씨가 흐리고 안개가 끼었다. 주막 주위에 거위들이 어슬렁거린다. 8시 17분 주막을 출발하여 남쪽으로 향하다. 9시 8분에 휴식. 남쪽으로 작은 계곡이 흐른다. 주위는 구릉이 달리고 있는 첩첩산중이다. 남쪽으로 향하는 행인들이 꽤 많다. 짐꾼들이 동물과 쌀, 담뱃대 그리고 상자를 지고 가고 있다. 주막들에서 많은 양의 놋쇠 그릇이 보인다. 행인도 많고 마을도 많다. 10시 4분 주막 출발. 남쪽으로 향하다가 약간 서쪽으로 틀었는데 감탄할 만하게 경작이 잘 된 지역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논이다. 배수로도 완벽하다. 버려진 땅은 한 뙈기도 없다. 길을 따라 연달아 고을과 마을이 나타난다. 덕평 주막이라는 곳은 주위엔 관목이 우거져 있고 산악지역의 분위기가 풍긴다. 11시 16분 마을 언저리에서 휴식을 취하다. 11시 45분 주막이 있는 원토 마을 서쪽 끝에서 쉬었다. 조선에서 다랑이논을 처음 보다. 어떤 곳은 180m~270m까지 올라갔다. 조선의 서쪽 지형은 토양이 쉬이 씻겨 내려가 경작하기 어려운데 이곳은 그와 달라 이처럼 계단식 경작이 가능하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어젯밤 경기도 소사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엄청난 기러기 떼가 서쪽에서 북쪽으로 낮게 날았다. 밤에 기러기 소리에 종종 잠을 깼다. 오늘은 꽤꽥거리는 기러기 소리가 더욱 잦다. 정말 많은 기러기가 주변을 날아다닌다. 조선인들은 기러기를 건드리거나 잡아먹지 않는다. 대신에 기러기를 잡아 집을 지키는 용도로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안성장에 갔다. 규모가 매우 컸다. 족히 4천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군중이 나를 보러 밀려든다. 북새통 속에서 한 소년이 넘어지며 감을 떨어뜨린다. 순식간에 등을 밟히고 진흙탕에 머리를 쳐박힌다. 사람들에 에워싸인 나는 앞을 볼 수 없다. 내게 적개심을 보이거나 쏘아보는 기색은 없지만 무례한 호기심은 놀랍다. ‘’쉿”, “제미”라고 외치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천태만상 호기심 어린 얼굴들이 보인다. 사진을 찍어두고 싶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고 무례하여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내 일꾼들이 몽둥이질을 해댄다. 소년을 후려치기도 하고 갓을 잡아채기도 한다. 나는 악당 같은 그들의 행동을 막느라고 힘들었다. 10시 42분 가까스로 장터를 벗어났다. 매우 신기한 경험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11월 1일 아침 8. 58 : 서울 갓전골 입동(수표교 근처)의 집에서 출발 ▶ 갓전골 : 조선 시대 수표교 부근 '갓전골'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수동과 관철동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갓(冠)을 만들어 팔던 가게가 많아 갓전골(갓전골)이라 불리게 된 지역이다. 9. 58:- Pa-chon-kori 도착 10. 40: 동작 나루를 건너 관악으로 향함 11. 9 : 승방돌 도착. 승방돌은 서울에서 20리, 과천까지는 10리 12. 29 : 과천의 끝 도착 낮 1.25 : 갈뫼(갈산)에서 휴식 2.10 : 사근내Sakunae(沙斤乃) 도착 ▶ 경기도 ‘사근내(沙斤乃)'는 오늘날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사근내' 또는 '사그내'는 오전동, 왕곡동 등 사방에서 흘러들어오는 개울을 뜻하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한자 표기로는 사근내(沙斤乃) 또는 사근천(沙斤川)이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평사천(平沙川), 고정동(古亭洞), 고고리(古古里), 내곡동(內谷洞) 등이 합쳐지면서 '고천리(현재의 고천동)'가 되었다. ‘사근내(沙斤乃)'의 역사적 역할 (사근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