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철이 깊어지며 겨울바람이 제법 매섭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와 달리 날씨가 갑자기 많이 추워졌고 곳곳에 많는 눈이 내릴 것이라는 기별이 들려옵니다. 날씨알림터(기상청)에서는 이를 두고 '대설(大雪)'이나 '폭설(暴雪)'이라 부릅니다. 말할 것도 없이 눈이 많이, 그리고 사납게 내린다는 것을 알리는 말로 오랫 동안 써 온 말입니다.  하지만 온 누리를 하얗게 덮어버린 눈의 바람빛(풍경)을 담아내기에는 어딘가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 듭니다. 오늘은 이 차가운 한자말을 갈음해, 소복이 쌓인 눈처럼 포근하고 넉넉한 우리 토박이말 '잣눈'을 알려 드립니다.

'잣눈'이라는 말은 '많이 와서 수북하게 쌓인 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잣'눈일까요? 잣눈'이라는 말을, 얼핏 보면 먹거리 가운데 하나인 '잣'이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잣'은 우리가 흔히 길이를 잴 때 쓰는 '자(尺)'에서 온 말입니다. 옛 어른들은 한 자(약 30cm) 높이 정도로 푹푹 빠질 만큼 많이 내린 눈을 보며 "자가 묻힐 정도로 깊다" 하여 '잣눈'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저 눈이 내리는 모습이 아니라, 이미 내려서 발목이 푹 잠길 만큼 두텁게 쌓인 됨새(상태)를 가리키는 셈이지요.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즐겨 쓰였습니다. 오탁번 님의 가락글(시) <비백(飛白)>을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간밤에 잣눈 내리고 아침 수은주가 영하 25도까지 내려갔다"

지은이는 영하 25도의 엄청난 추위 속에서도 간밤에 소리 없이 내린 '잣눈'을 이야기합니다. 춥고 시린 겨울밤이었겠지만, '잣눈'이라는 낱말의 도움으로 그 바람빛(풍경)이 마냥 춥게만 느껴지지 않고 어딘가 깊고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가락글(시) 속의 바람빛(풍경)처럼, 오늘 내일 여러분 곁에 내릴 눈도 누리를 포근히 감싸 안기를 바랍니다.

이 멋진 말을 우리 나날살이(일상)에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오늘 아침의 기별부터 토박이말로 부드럽게 다듬어 보고 싶습니다. "밤 사이 기온 뚝 중부 대설"라는 말을 "밤새 추워져 온 누리가 잣눈에 묻히겠습니다"라고 적어본다면 어떨까요? 눈이 주는 어려움보다, 눈이 빚어낸 고요한 바람빛(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마주이야기(대화)에서도 써보세요. 추위에 잔뜩 웅크린 동무에게 "날이 많이 차다. 그래도 밖을 봐, 잣눈이 소복해서 마음만은 따뜻해지는 것 같아."라고 건네는 겁니다.

또, 눈 내린 바람빛(풍경)을 찍어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올릴 때도 좋을 것입니다. "발자국 하나 없는 아침, 잣눈이 온 누리를 모두 덮어버렸네요. 이 고요함이 참 좋습니다."라고 적어보세요. 읽는 이들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매서운 추위와 함께 내리는 눈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그 느낌은 달라집니다. 오늘 눈이 내리는 곳에 계신 분들은, 밖을 바라보며 '대설'이라는 말 대신 '잣눈'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세요. 야무진 손끝으로 삶의 매듭을 짓듯, 우리 마음속에도 잣눈처럼 깊고 따뜻한 겨를이 소복이 쌓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