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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 부탄

길 위의 소 한 마리도 나보다 먼저 깨달음을 얻을지 모른다
[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 14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부탄에서는 어느 곳을 가든 동물들이 풀을 뜯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차가 씽씽 달리는 길가에서도 소와 말, 개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풀을 뜯고 있어, 처음 부탄을 찾은 이방인은 “잘못 교통사고가 나지나 않을까?” 하고 불안감을 놓지 못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달랐다. 누구 하나 동물을 귀찮아하거나 밀어내려 하지 않으며, 도로에 동물이 들어오더라도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조심스레 피해 지나간다. 도시 한복판에서도 무리 지어 다니는 동물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길에 배설하거나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조차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다. 부탄에서는 동물 학대라는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치지 않는다. 부탄 사람들은 생명이면 그 무엇이든 동등하게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살생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할 일이며, 자연스레 부탄에는 도축장이 없다. 식용 고기는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해마다 3~4월에는 육식을 금하는 기간이 정해져 식당과 식육점에서도 고기를 판매하지 않는다.

 

 

부탄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

 

부탄의 농업과 유목 문화 속에서 동물은 삶의 조력자이자 함께 시간을 축적해 온 오랜 벗이다. 특히 고산지대의 야크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존재다. 부탄인들은 야크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고, 사람과 같이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새끼가 태어나면 집안의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 기뻐한다. 경제적 자원을 넘어선 정서적, 영적 동반자인 셈이다.

 

히말라야의 가파른 산길에서는 말과 노새가 생계의 파트너로 함께한다. 짐을 나르던 말이 지쳐 보이면 사람들은 재촉하지 않고 그대로 멈춘다. “동물도 피로하면 쉬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몸에 밴 것이다. 특히 트레킹 루트에서는 말 관리 규범이 엄격해 일정 거리마다 물과 사료, 휴식을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삶의 태도가 곧 동물과의 약속을 지키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야생동물과의 만남 역시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길가에 원숭이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조용히 비켜설 뿐, 위협하거나 쫓지 않는다. 들짐승이 농작물을 해쳐도 농부들은 “내 복이 짐승에게 갔다”라고 말하며 분노를 누른다. 산길을 걷다 새나 사슴이 스쳐 지나가면 오히려 “오늘 운이 좋다”라고 여긴다. 인간도 자연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동물과의 조우는 침범이 아니라 인연으로 받아들여진다.

 

국가 정책 속에 스며든 ‘동물 우선’의 철학

 

부탄의 동물존중은 일상의 정서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 정책의 깊은 뿌리이기도 하다. 헌법은 국토의 70% 이상을 영구적으로, 숲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원칙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확보하고, 미래 세대까지 생태계를 안전하게 넘겨주기 위한 토대다. 실제로 부탄 국토의 절반 이상은 국립공원, 보호구역, 생태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어, 벵골호랑이와 구름표범, 흰꼬리독수리 같은 희귀종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번식할 수 있다.

 

또한 불교적 가르침에 기반하여 고기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단순한 법적 규제가 아니라, 살생을 줄이면 업(karma)을 덜어낸다는 국민적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전국적인 개 중성화 프로그램(NRCP)도 오랜 기간 꾸준히 시행 중이다. 유기견을 줄이기 위해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통 없이 인간과 함께 살아갈 생태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야생동물 구조센터 운영, 농작물 피해 보상제 등도 동물과 인간 모두가 안전하도록 마련된 장치다.

 

새로운 개발을 시작할 때도 부탄은 언제나 ‘동물 우선’을 원칙으로 삼는다. 도로나 건물을 지을 때는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 공사의 소음과 진동, 숲과 하천과의 거리까지 철저히 검토한다. 인간이 자연을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작은 틈을 내어 조심스럽게 들어앉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종교와 문화에 뿌리내린 동물 존중

 

이 모든 실천의 근원에는 불교의 깊은 가르침이 놓여 있다. 부탄 사람들은 모든 존재가 윤회 속에서 깨달음의 가능성을 지닌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동물을 학대하거나 살해하는 일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해치는 일로 간주한다. 명절이나 축일에는 작은 생명들을 방생하며 그들의 자유와 안녕을 기도하는 전통도 이어진다.

 

 

사원과 불화에 등장하는 사자, 코끼리, 말, 새, 용 등의 동물은 지혜, 자비, 호법, 보리심을 상징한다. 이들은 신성한 존재와 인간 세계를 잇는 매개로 이해되며, 인간의 수행을 돕는 영적 동반자로 여겨진다. 그만큼 동물은 부탄 문화에서 신성하고도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취급된다.

 

부탄이 보여주는 ‘행복의 또 다른 얼굴’

 

이렇게 부탄의 동물사랑은 감정적 호감이나 개인적 성향을 넘어, 삶과 문화, 종교와 국가정책이 맞물려 형성된 전인적 값어치다. 사람과 동물, 자연이 조화를 이룰 때 사회도 평화로워진다는 믿음은 부탄의 중요한 정신적 기반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풍경은 고요하지만, 생명으로 충만하며, 한 마리 개가 길 한복판에 앉아 있어도 아무도 거부감울 가지지 않는 일상이 이어진다. 산새의 울음소리마저 존중받는 나라. 그 정결한 태도 속에서 부탄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한다. 행복이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섬세한 존중에서 비롯된다고.

 

– 동물과 인간, 그리고 불성이 흐르는 풍경에 대하여 –

 

부탄에서 새벽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첫 햇살이 히말라야 능선을 넘어오기도 전에,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먼저 깨어 움직이고 있음을.사원의 지붕 위에 앉은 까마귀는 관세음보살의 전령인 듯 맑은 울음을 올리고, 길모퉁이마다 졸고 있는 개들은 마치전생의 공덕으로 사원 가까이 태어난 수행자처럼고요 속에 앉아 있다.

 

 

부탄에서는 동물을 “짐승”이라 부르지 않는다.그들은 단지 인간과 다른 옷을 입고 태어나윤회의 길을 함께 걷는 존재일 뿐이다.《대반열반경》에서 말하듯,모든 생명은 이미 불성을 지니고 있으니오늘 길 위에서 마주친 소 한 마리도내일은 나보다 먼저 깨달음을 얻을지 모른다.

이 믿음은 부탄의 공기처럼 오래되고 자연스럽다.

산길을 따라 차를 몰다 보면가끔 소가 한가롭게 도로 한복판을 점령하고 있다.그러면 운전자는 경적 대신 미소를 건넨다.“당신 길 먼저 가시오.”이 한마디에 담긴 마음은 경전 속 자비(karuṇā)가 책장을 벗어나살아 있는 숨결로 닦아온다는 증거다.

 

부탄의 절들은 동물들의 쉼터이기도 하다.탐싱 사원의 오래된 처마 아래에는비에 젖은 강아지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고,파로의 사원 마루에는 늘 같은 자리에서수행자들을 지켜보는 노견이 있다.사람들은 그들을 쫓지 않는다.글을 읽지 못해도 동물들은 불성을 지녔고,말하지 못해도 그들의 눈빛은구루 린포체(8세기 티베트 불교의 실질적인 창시자)의 화현일지 모르는 존재의 따스함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후,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이절 입구에서 서성이는 아이들에게 빵조각을 한 줌씩 나누어 주었다.“아이들에게 보시하는 것은 가장 쉬운 수행이지요.”그의 발치에서 빵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조용히 꼬리를 흔드는 거리의 개들이었다.금강승의 보살계가 말하는 “모든 중생에게 베풀라”라는 계율은이렇게 눈앞에서 빛이 되었다.

 

부탄 정부가 ‘도살 금지일’을 지정하고전국의 유기견을 안락사 대신 중성화ㆍ예방접종으로 돌보는 정책을 펼친 것도 단지 행정이 아니다.이 땅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하루 생명을 살리는 일은윤회의 바다에서 한 존재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는 것을. 불교의 가르침이 법을 만들고, 법이 다시 사람의 마음을 지탱한다. 부탄의 숲은 동물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성소다.야크가 평원을 지나가면, 목동은 그 뒤를 따라 멀찍이 걸으며그가 오늘 어떤 기분으로 바람 속에서 헤매는지 살핀다.사슴이 마을에 내려오면 아이들은 돌을 던지기보다손에 쥔 소금 조각을 건네기 바쁘다.

 

마을 어른들은 말한다.“그들도 길을 찾고 있지. 우리처럼.”

부탄에서 동물은 불쌍한 존재도, 보호해야 할 대상만도 아니다.그들은 단지 지금,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동반자’이며한 생의 무게를 짊어진 또 다른 순례자이다.때로는 우리보다 더 순수하게, 더 조용하게,깨달음에 가까이 서 있는지도 모르는 존재.

 

나는 부탄을 떠나는 날,파로 공항 근처에서 바람에 털을 흩날리는 개 한 마리를 보았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은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겠지.” 그 말은 아마, 이 땅에 흐르는 인연사상의 근원적 목소리였을 것이다.

부탄에서 동물과 인간은 서로를 보호자가 아니라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여긴다.

 

바람이 기도 깃발을 흔들 때마다 그 깃발 속

만트라(기도 중에 반복적으로 외우는 신성한 소리, 단어, 구절)는산과 강, 사람과 짐승, 눈에 보이는 것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를동등한 생명의 자리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래서 부탄은 오늘도 불성의 빛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나라다.그리고 그 빛은 가장 작은 생명의 눈동자 속에서도조용히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