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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토박이말 이야기

[눈위에 남는 발자국을 담은 말]자국눈

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자국눈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예수님오신날(성탄절)을 이틀 앞둔 오늘, 하늘빛은 조금 흐리다고 합니다. 들려오는 기별(뉴스)을 보니 뒤낮(오후)부터 비가 내리고, 경기도 위쪽과 강원도 높은 곳에는 눈이 올 거라고 하네요. 그런데 날씨알림이가 이어주는 "적설량 1cm에서 5cm안팎"이라는 말이 조금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 줄 아름다운 토박이말 '자국눈'을 꺼내 봅니다.

 

'자국눈'이라는 말을 소리 내어 읽어 보면 눈앞에 뚜렷한 발자국 하나가 찍히는 듯하지 않으신가요?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를 빌리자면 '자국눈'은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내린 눈'이라는 뜻입니다. 눈이 펑펑 내려서 온 누리를 하얗게 덮으면 좋겠지만, 때로는 바닥에 살짝 깔릴 만큼만 올 때가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때, 사람이 밟으면 발자국이 뚜렷하게 남을 만큼 얇게 깔린 눈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쓰였습니다. 백수린 님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에 실린 <폭설>을 보면, 주인공이 눈 내리는 바람빛(풍경)을 바라보며 제가 아는 아름다운 눈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대목이 나옵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것은 정말 내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눈송이였다. 마른눈. 자국눈. 가랑눈. 국어사전에서 내가 발견했던 무수한 단어로도 형용하기가 충분치 않던 눈송이."

 

지은이는 눈송이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려고 말집(사전)에 잠들어 있던 눈의 이름들을 부릅니다. 마른눈, 가랑눈과 함께 불린 '자국눈'은 더 살갑게 우리들 마음에 내려앉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이 말을 우리 나날살이(일상생활)에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오늘 같은 날씨 기별을 할 때 딱딱한 숫자를 갈음해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묏길(산길)에 자국눈이 내려앉아, 지나는 짐승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볼 수 있겠습니다." '1cm 적설'이라는 말보다 짐승들이 지나간 자리가 눈 위에 꾹꾹 찍혀 있는 바람빛(풍경)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또, 아이들과 나누는 마주이야기(대화)에서도 이 말을 써보세요. 눈싸움을 바랐던 아이들이 눈이 조금밖에 오지 않아 서운해 할 때, 이렇게 달래주는 겁니다. "얘들아, 눈이 너무 적게 와서 눈사람은 못 만들겠어. 겨우 자국눈이 내렸을 뿐이야. 우리 발자국을 꾹꾹 찍어볼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온겨울달의 막바지,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떤 발자국이 남아 있나요? 온 누리를 뒤덮을 만큼 큰 눈은 아니더라도, 지난 날의 자취를 가만히 보여주는 '자국눈'처럼 올 한 해 우리 삶의 무늬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