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전주박물관(관장 박경도)은 상설전시실 내에 왕실 기록문화유산 공간을 조성하고 이를 기려 주제전시 ‘기록의 보고(寶庫)를 열다’를 열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전주와 조선왕실실>의 관람 환경을 개선하며 외규장각 의궤와 전주사고의 실록을 조명하는 특별 공간을 마련했다. 이번 주제전시는 ‘조선 왕실의 본향’인 전주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전주와 조선 왕실의 관계와 경기전의 <태조어진>과 전주사고에 있었던 조선왕조실록의 값어치를 조명한다. 또한 외규장각 의궤, 지도, 궁중기록화까지 다양한 기록문화유산을 소개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지켜온 사람들의 노력을 돌아본다.

실록과 의궤 새롭게 만나기
이번에 신설된 기록문화유산 공간에서는 국가에서 편찬한 기록유산인 실록과 의궤를 소개하면서 각 기록물의 성격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했다. ‘어느 실록상자의 기억’으로 시작하는 실록 전시 공간은 전주사고본 실록의 의미를 조명한다. 조선 초기, 실록은 서울의 춘추관, 충주, 성주 그리고 전주 사고로 보내졌는데 임진왜란 직전 전주사고에는 태조부터 명종까지 실록 576책이 약 53궤에 보관되고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다른 사고의 실록이 불에 탔을 때, 전주사고에 있던 수십 개의 실록상자는 정읍 내장산 깊은 곳으로 안전하게 옮겨졌다. 안의와 손홍록 등 전북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실록을 지켜냈으며, 이들의 헌신 덕분에 조선 전기 200년의 역사 기록이 전해질 수 있었다.
90일마다 정기적으로 교체 전시할 외규장각 어람용 의궤는 왕실의 위엄을 강조하며 어진 제작과 관련된 의궤를 선보인다. 2011년 프랑스에서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 영구기탁된 외규장각 의궤가 특별전 외에 소속박물관의 상설실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전주가 태조 이성계의 조상이 살았던 조선 왕실의 본향으로, 조선 초부터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은 지역이라는 점과 관련된다.
1410년부터 전주 경기전에 모셔진 <태조어진> 또한 임진왜란 당시, 경기전 참봉이 오희길에 의해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었다. 이번에 펼쳐진 <어용도사도감의궤>(1713)는 숙종어진을 제작했던 40여 일 동안의 과정을 기록한 책으로, 당시 숙종과 관료들은 25년 전 1688년의 태조어진 모사 사업을 참고했다. 1688년 숙종은 경기전의 <태조어진>을 모사해 남별전(후에 영희전)에 봉안했는데, 그 사업을 기록한 <영정모사도감의궤>(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고종 때 다시 모사되어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어진>(1872, 어진박물관)도 이번에 함께 출품되었다.


《세종실록》과 《임계기사》의 만남
이번 전시를 극적으로 만든 부분은 전주사고에 있었던 《세종실록》(정족산사고본) 바로 옆에 안의, 손홍록 선생이 370여 일 동안 실록을 지키며 썼던 당직일기인 《임계기사》가 함께 펼쳐진 점이다. 국립전주박물관과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의 상호 신뢰와 협력적 관계 속에 국보인 《세종실록》 2책의 4주 대여가 성사되었다. 또 탐진 안씨 물재공파 종중의 결단 덕분에 정읍시립박물관에 기탁된 《임계기사》가 처음으로 정읍을 나와 외부 기관에서 전시될 수 있었다. 434년 만에 전주에서 다시 만난 두 기록물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
보물창고가 된 전시실에서 나만의 보물찾기
<기록의 보고를 열다>에서 ‘보고’는 전주사고와 외규장각을 비유한 것이었지만, 평소에 보기 어려운 국보와 보물이 다수 출품되면서 전시실 전체가 보물창고가 되었다. 그중 《세종실록》과 <태조어진>, <흑장궤>는 문화유산의 안전을 위해 3월 24일까지 4주만 전시한다. 그 밖에도 조선 건국을 도왔던 이성계의 이복형제인 이화를 개국공신으로 임명한 문서 <이화개국공신녹권>(1392), 전통적 천문도와 서양에서 유입된 신법천문도를 나란히 도해한 <신구법천문도>, 1719년 숙종과 11명의 관료의 기로소 입회를 기념하는 《기해기사첩》은 모두 지정문화재이다.
더불어 19세기 전주부성을 그린 회화식 병풍 <완산부지도>, 신경준이 강화도부터 압록강 하구까지 서해안 지형을 자세하게 도해한 <강화도이북해역도>는 또 다른 형태의 기록유산이다. 전주와 강화도를 강조한 각각의 지도에서 실록과 의궤가 이동했던 장소를 짚어볼 수 있다. <완산부지도>에 그려진 경기전과 전주사고의 옛터, <강화도이북해역도>에서 크게 강조된 강화도 속 정족산사고를 살펴보면서 관람객들은 전주사고의 실록과 외규장각 의궤의 이동과 수난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애썼던 사람들의 헌신도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지역과 중앙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국립박물관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람 환경을 개선하고 상설전시실의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상설실에서 90일 동안 진행되는 <기록의 보고를 열다>를 통해 의궤와 실록, 지도와 그림이 2026년 관람객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었으면 한다. 많은 이들이 기록유산을 어렵게 느끼지만 기록된 내용이나 그것의 전래 과정에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지켜온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전시실에서 만난 빛나는 보물로 오늘 내 삶의 기록이 의미를 갖고 그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