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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937년/2020년 월성 수습 돌비석 조각 원래 하나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과 국립경주박물관의 돌비석 조각 합친 모습 첫 공개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소장 임승경, 아래 ‘경주연구소’)와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윤상덕, 이하 ‘경주박물관’)은 오는 4월 13일(월) 아침 10시 경주박물관 신라 천년보고에서 ‘경주 월성 서편 수습 돌비석 조각(碑片, 비편)’을 특별 공개한다. 이번 특별 공개에서는 경주연구소가 지난 2020년 경주 월성 주변에서 거둔 돌비석 조각 한 점과 경주박물관이 일제강점기부터 소장하고 있는 돌비석 조각 한 점이 하나로 합쳐진 모습이다.

 

 

 

 

경주연구소가 거둔 돌비석 조각은 가로 16.47cm, 세로 16.58cm, 두께 13.67cm, 무게는 약 2.7kg으로, 지난 2020년 경주 계림~월성 진입로 구간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경주박물관 소장 돌비석 조각은 가로 13.62cm, 세로 11.13cm, 두께 9.75cm, 무게는 약 1.23kg이다. 이 돌비석 조각 뒷면에는 ‘昭和(소화) 一二(일이) 六(육) 二七(이칠) 西月城址(서월성지) 崔(최)’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이는 1937년 6월 27일에 서월성지에서 거둔 유물이며, 거둔 사람은 당시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직원이던 최남주(崔南柱)였다는 점을 기록해둔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연구소는 거둔 돌비석 조각을 정밀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돌비석 조각과의 관련성이 제기되어, 두 기관이 돌비석 조각의 석재(石材) 산지(産地)를 공동 분석한 결과, 두 비편 모두 경주 남산 알칼리 화강암으로 제작되었음이 밝혀졌으며, 이후 3차원(3D) 스캔 결과물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두 돌비석 조각의 한쪽 면이 서로 합쳐지는 것으로 드러나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돌비석 조각에 사용된 서체는 신라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해서(楷書)가 아니라 예서(隸書)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 해서(楷書) : 글씨를 흘려 쓰지 않고 정자로 반듯하게 쓴 글자체. 곧 점 찍기, 가로 긋기, 내려 긋기, 갈고리, 오른쪽 삐침, 왼쪽 길게 삐침, 왼쪽 짧게 삐침, 파임 등 8개의 방식으로 획을 그은 서체

* 예서(隸書) : 도장 등에 흔히 쓰이는 획이 복잡한 전서(篆書)의 획을 간략화하여 일상적으로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바꾼 서체

 

 

 

이와 관련하여 지난 2월 11일에는 신라사와 고구려사, 금석문, 서체 등 다양한 방면의 전문 연구자들이 모여 돌비석 조각의 실물을 살펴보고 앞으로 연구 방향을 모색하는 ‘월성 서편 수습 돌비석 조각 전문가 포럼’이 열린 바 있다. 당시 포럼에서는 고구려사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돌비석 조각의 서체가 광개토왕릉비의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비석의 건립 주체를 고구려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다. 곧 예서로 쓰인 신라 금석문이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데 견줘, 광개토왕릉비의 서체가 예서이며, 비편에서 확실하게 판독되는 글자인 백(白), 천(天), 공(貢), 불(不), 도(渡)가 광개토왕릉비에도 확인된다는 점이 이 견해의 주요한 근거다.

 

반면 신라사 연구자들은 서체만으로 건립 주체를 확정하기에는 서체가 특정 시대나 국가 혹은 지역의 전유물로 볼 수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들 돌비석 조각이 경주 월성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비의 건립과 그 내용 작성 주체를 신라인들로 고려해 볼 수도 있다는 견해를 제기하는 등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과는 별개로 이번 특별 공개는 1937년과 2020년이라는 거둔 시간 차이가 있음에도 서로 떨어져 있던 돌비석 조각이 합쳐진 모습으로 공개된다는 점만으로도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