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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522. 우리 겨레의 혼인, “장가든다”였다

1522. 우리 겨레의 혼인, “장가든다”였다

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해온 전통혼례를 보면 신랑이 자신의 집에서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신부집에 가서 혼례를 올리고 그곳에서 머물러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가든다.”라는 말이 나왔는데 고구려의 “데릴사위제”도 그런 전통의 하나입니다. 율곡 이이를 낳은 조선 중기의 예술가인 신사임당 (申師任堂, 1504~1551)의 남편도 혼인한 뒤 한동안 강릉 처가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고려말 관(冠)·혼(婚)·상(喪)·제(祭) 곧 사례(四禮)에 관한 규정을 담은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들어오면서 주자가례 규정대로 신부집에 가서 혼례를 치른 다음 바로 신부를 데려오는 것으로 바뀝니다. “장가간다”에서 “시집간다”로 바뀐 것이죠. 대신 주자가례대로 처가에서 전안례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혼례예식은 모두 처가에서 치르는 “반친영(半親迎)”으로 정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