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학자 조재삼의 책 ≪송남잡지(松南雜識)≫에는 청백리 황희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 황희는 매우 청렴하여 관복도 한 벌로 빨아 입을
지경이었습니다. 세종임금은 황 정승을 안쓰럽게 여겨 도와줄 방법을 생각한 끝에
“내일 아침 일찍 남대문을 열었을 때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문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다 사서 황 정승에게 주어라."라고 하였지요.
그러나 그날 뜻밖에도 새벽부터 몰아친 폭풍우 때문에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가 한
명도 없었는데 다 어두워져 문을 닫으려 할 때 겨우 달걀 한 꾸러미를 샀습니다.
하지만, 황희가 달걀을 가지고 집으로 와 삶아 먹으려고 하자 달걀이 모두 곯아서
한 알도 먹을 수가 없었다지요. 그래서 “계란에도 뼈가 있다.”라는 뜻인 “계란유골
(鷄卵有骨)”이란 사자성어가 생겼습니다. 비슷한 뜻의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라는 속담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