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후 임금의 유모는 “봉보부인”이라 이름하였고, 나중에 예우를 높여 조선시대 법전인 대전회통에는 종1품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봉보부인은 임금의 탄신이나 자신의 생일 또는 나라에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특별한 축하예물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포악한 임금이라고 알려진 연산군도 봉보부인만큼은 끔찍이 여겼다고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 사대부가 아닌 일반 백성 출신이었던 봉보부인 중 일부는 사가에 청탁꾼이 몰리는 등의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참고 :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문식·김정호, 김영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