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의 피붙이 사이 혼인은 제2대 혜종(惠宗)이 맏공주를 아우 소(昭)의
아내로 삼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 초기 김종서(1390~1453)·
정인지(1396~1478) 등이 쓴 ≪고려사(高麗史)≫ <충선왕세가(忠宣王世家)>를
보면 “문무양반들은 동성혼인(同姓婚姻)을 하지 말 것이며, 외가 사촌(四寸)도
구혼(求婚)할 수 없도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피붙이 사이의 혼인을 못하게
한 것이죠.
하지만, ≪고려사≫ <공민왕세가(恭愍王世家)>를 읽어보면 “공민왕 15년
(1366년) 왕씨를 익비(益妃)로 삼았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익비는 제8대 임금
현종의 아들인 평양공(平壤公) 기(基)의 13대손인 덕풍군(德豊君) 의(義)의
딸입니다. 이를 보면 고려왕조는 제31대 공민왕 때까지도 여전히 피붙이 사이의
혼인을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