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신라 지증왕 6년(505) 11월 조에는 “처음으로 담당 관청 곧 ‘빙고전
(氷庫典)’에 얼음을 저장하도록 했다.”라는 기록이 있고 경주에 보물 제66호 석빙고
(石氷庫)가 있어 이미 이때부터 얼음을 저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고려사’ 소사(小祀) 조는 얼음을 채취할 때 지내는 ‘사한제(司寒祭)’에 대해서
전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한양에는 창덕궁 안에 있던 내빙고(內氷庫)와 4대문
밖에 있던 외빙고(外氷庫) 곧 동빙고와 서빙고라는 얼음을 저장하는 장빙고
(藏氷庫)가 있었지요. 동빙고의 얼음은 제사에 쓰고 서빙고의 얼음은 토산물을
진상하는 데 썼습니다.
이렇게 저장한 얼음은 임금이 종친과 대신, 각 관아에 빙표(氷票)를 주어
장빙고에서 얼음을 타가도록 했는데 이것을 ‘사빙(賜氷)’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얼음을 채취할 때 백성들이 큰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안 정조임금은 재위 13년에
내빙고를 없기까지 했습니다. 시원한 얼음을 즐기기에 앞서 백성의 고통을 생각한
정조임금의 따스한 마음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