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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771. 금(金)을 일컫는 말 “노다지”는 어디서 왔을까요?

1771. 금(金)을 일컫는 말 “노다지”는 어디서 왔을까요?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 노다지 파려거든 / 요 내 배알[아랫배]에서 팔 것이지 /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 문전옥답 처넣더니 / 요 내 배알까지 처넣는구나.”

위 노래는 전라도의 <노다지 타령>입니다. 나라가 무너져가는 대한제국 말기에는 외국인들이 몰려들어 우리나라 곳곳에서 금을 캐가려 안달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곳인 청천강 상류 운산은 미국인 모로스가 차지하고, 은산 금광은 영국이 모르겐에게, 수안 금광은 일본인 야마구치를 통해서 영·미·일 합자회사로, 당고개의 금광은 독일인 월터에게, 직산 금광은 일본인 시부사와에게, 정선의 천포광산은 도쿄의 쇼와(昭和)공업에게, 동광은 청나라 사람 강진황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거의 헐값으로 금을 노략질해 갔는데 금을 실어가는 상자에는 “노 텃치(No Touch)"라고 붉은 글씨를 써놓고 호송인이 총으로 주인 한국인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 이전 나라에서 캐지 못하게 하여 ”별은(別銀)”이라고 불렀던 금은 그 뒤 “노다지”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금이 제 이름으로 불리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 외국인들의 노다지 노략질은 결국 한국 사람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도 곡괭이 하나씩 둘러메고 이 산 저 산 헤매며 금 캐기에 혈안이 되었지요. 조선시대 경종 임금 때 가짜 공명첩을 만들어 일확천금을 꿈꾸려 했던 것처럼 대한제국 말기 많은 사람도 외국인들 영향으로 노다지의 허망한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