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오늘 우리가 기려야 할 사람 중에는 이봉창 의사와 김지섭 의사도 있습니다. 이봉창 의사는 1931년 1월 8일 일황이 사는 황거로 들어가는 사쿠라다몽이란 문 앞에서 일황의 마차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으며 그에 앞서 김지섭 의사는 1923년 12월 20일 역시 황거로 들어가는 니주바시(이중교)에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불행히도 불발이었으나 식민지를 총 지휘한 일황과 그가 사는 황궁을 응징하고자 하는 투철한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한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이 침체기를 맞이할 무렵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곧바로 상하이 훙커우공원의 윤봉길 의사 의거로 이어졌고, 중국 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돕는 계기를 만들었지요. 두 의사의 거사는 중국정부로 하여금 한민족의 강한 저항심과 애국심을 높이 사게 했으며 이들에게서 일찌감치 중국은 독립의 조짐을 예견했는지 모릅니다.
일본 도쿄 여행에는 반드시 일황의 집 황거가 들어 있습니다. 잘 정돈된 드넓은 광장과 황거공원이라고 이름 지은 잘 가꿔진 정원을 거닐거나 고요한 해자(물 웅덩이) 건너편 황거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일이 이 코스의 절정이지만 한국인들이라면 여기서 그칠 게 아니라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있던 장소인 사쿠라다몽과 김지섭 의사의 의거 장소인 니주바시 다리 앞에 서서 두 분의 의거를 새기고 나라 사랑을 다지는 여행이었으면 합니다. 황거는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관광의 시각으로 보고 오기엔 너무나 가슴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 "이봉창 의사의 의거 현장을 가다" 주간지 ≪사건의 내막≫ 610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