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22권, 5년(1423) 10월 8일 기록에는 “환자 한문직(韓文直)이 주방(酒房)을 맡고 있더니, 수박[西瓜]을 도둑질해 쓴 까닭에 곤장 1백 대를 치고 영해로 귀양보냈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수박은 한자말로 “서과(西瓜)”라고 했는데 주방장이 수박 하나를 훔친 죄로 귀양까지 가다니 조선시대에는 수박이 흔한 과일은 아니었나 봅니다.
또 세조 19권, 6년(1460) 1월 16일 기록에도 “너희가 비록 각각 술을 올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 잔을 마시면 너희의 술을 고루 마시는 셈이다.”하고, 친히 먹던 수박[西瓜]을 나누어 좌우의 별운검(別雲劍) 한명회·구치관 등에게 내려 주고, 큰 고기를 좌우의 재추(宰樞)와 야인(野人)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1월 한겨울에도 수박을 먹었다는 이야기인데 저장시설이 있었는지, 남쪽 나라에서 들여왔는지 궁금합니다.
그런가 하면, 일제강점기 때의 잡지 ≪별건곤≫ 제8호에도 수박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은 세계뎍으로 교통이 편하게 된 고로 우리 곳에서 나는 것도 먹을 뿐 아니라 남양(南洋)이나 그 외에 어느 곳에 것이던지 쟈유로 슈입하게 되여서 엄동설한에도 「빠나나」나 「수박」 가튼 것을 먹게 되엿다. 그러나 언제든지 그 계절(季節)에 나는 것을 그 계절에 먹어야 해가 업고 영양상, 생리상에 지극히 조흔 것이다.”(녀름의 과물이야기, 녀름상식) 이미 이 시기에도 제철 과일을 권장하고 있는데 수박 역시 시원한 원두막에서 먹는 맛이 최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