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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08. 조선시대 돈내기로 패가망신한 이야기


혜강(惠岡) 최한기(1803~1877)는 저술한 책이 1천 권에 이를 만큼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는데 지금 알려진 것은 모두 1백 권 정도이고, 실제로 남아 있는 것은 80여 권이라고 전합니다. 그의 책 가운데 ≪인정(人政)≫ 제12권 ‘잡기(雜技)’를 경계함에는 “무용(無用)한 일에 마음을 쓰는 자는 반드시 유용한 일에 소홀하고, 유용한 일에 전심(專心)하는 자는 반드시 무용한 일을 천히 여겨 버린다. 잡기에 탐혹(貪惑)이 깊어지면 인도(人道)를 폐하면서까지 즐거움에 탐닉하며 가산(家産)을 탕진하면서 법을 범하게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잡기’냐 아니냐는 그것에 돈을 거느냐 순수하게 즐기느냐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심리록(審理錄)≫ 제1권(1777년)에 보면 태천(泰川) 사람 양만덕의 글이 나옵니다. 내용을 보면 “양만덕 등이 돈내기를 하는데, 신봉춘이 돈을 구걸하자, 돈은 주지 않고 말이 불손하다고 하여 양만덕이 목을 졸라 즉사시키고 시체를 저수지에 버렸다.”든가 위원(渭原) 사람 이명중이 “조정화와 돈내기를 하다가 치고받고 싸움을 하여 이튿날 조정화를 죽게 하였다.”와 같은 기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최한기가 말한 ‘인도(人道)를 폐하고 자신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 꼴이지요. 그런데 조정에서도 돈내기는 있었습니다.

정조실록 38권(1793)에 보면 “춘당대에 나아가 문무 제신들에게 편을 지어 활쏘기를 하게 하였는데, 문신이 한편이 되고 무신이 한편이 되어 점수를 따져서 돈내기를 한 다음 날을 잡아 장용영(壯勇營)에서 잔치를 베풀고 놀기로 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러나 조정에서 대신들을 돈내기하게 한 것은 그 품격이 약간 다릅니다. 이는 흥을 돋우기 위한 것으로 앞서 백성의 살인을 부르는 돈내기와는 다릅니다. 돈내기도 결국 적당한 선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따라 건전성이 부여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