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 세 소년은 몸이 아파서 / 하루 놀려다가 뚜드려 맞았네 / 몽두리 맞고서 굴 안에 끌려와서 / 천장이 떨어져서 이 세상 이별했네 / 죽은 아 꺼내서 손발을 만지면서 / 눈물을 흘리면서 이름만 불러봤네 / 감독놈들 몽두리 들고서 죽은 사람 옆에 두고 석탄 담아 내라 했네.”
위는 "강제연행된 조선인 석탄광부의 노래" 중 일부입니다. 지난 8월6일부터 17일까지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주관으로 '경술국치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이 있었습니다. 기타큐슈의 치쿠호 탄광을 시작으로 나가사키,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 등지의 조선인 강제노동현장과 여러 추도시설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도쿄의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강제로 합동 제사)된 조선인 2만 1천명의 영혼을 하루 속히 분사(유족이 원하는 곳에서 제사 지내는 일)되도록 요구하는 답사일정이었습니다.
위 노래가사를 전해준 분은 강제연행된 조선인 2세인 배동록 할아버지로 시모노세키일대를 안내해주시면서 어머니와 함께 전쟁 중 일본군의 잔학성과 만행을 온갖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꿋꿋이 알려오신 분입니다. 올해 67살로 11월 10일 우스이초등학교에서 700회의 증언을 앞두고 있는 배 할아버지는 시모노세키의 옛 조선인 동네 이른바 똥굴 동네에 이르러서는 설움이 북받혀 땅을 치며 통곡하시는 바람에 답사기행 참가자들 모두를 울리셨습니다. 하늘도 감동한 것인지 굵은 빗줄기를 뿌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조선인 1세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강제로 연행되어 비행장 활주로 공사, 군수공장 노동, 지하 탄광 속에서 진폐 가루를 마시며 죽어갔으며 살아 남은 자들은 귀국을 하지 못한채 화장터 옆 똥굴동네에서 버림받듯 살아야했으며 나가사키에서는 원자폭탄을 맞고 숨져갔고 도쿄에서는 관동대지진으로 또 죽어갔습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어 일본인을 죽이려한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대량학살을 저지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이야기로 치바현 관음사에서 우리는 일본인 할머니의 증언을 똑똑히 들었습니다.그 뿐만 아니라 패전 뒤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강제연행자들을 태워 보내주는 양 하다가 배를 폭파시켜 수천명을 바다에 수장 시킨 이른바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등 일본의 그 죄악상을 일일이 열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8월은 휴가로 들뜰 수만은 없는 달입니다. 전쟁에 광분하던 일본은 해방65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야스쿠니합사'문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쟁에 나가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죽은 자들을 '영웅'으로 받들며 언제라도 다시 전쟁에 뛰어들기를 부축이는 자세입니다. 그런 자세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흉악한 집단의 행동으로 이번 한일평화기행단의 야스쿠니방문 저지를 통해 그들의 음흉한 흉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일평화답사단 일행 중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강제로 무단 합사된 야스쿠니를 방문키 위해 참가한 연로하신 분들이 계셨는데 우익들의 협박과 경찰의 저지로 끝내 발길을 돌린 것만 봐도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치 100년, 해방 65년의 의미를 재일동포 배동록 할아버지는 시멘트 바닥을 치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일본의 무서운 군국주의를 부디 잊지 마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