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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와 법륭사 건축공사장의 대목수들


‘노가다’와 법륭사 건축공사장의 대목수들


서울 관악구 쪽에서 노가다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신림9동 살고 있는 학생인데요. 방학기간에 노가다 하고 싶은데요. 새벽에 직업소개소 같은 곳 가야 한다던데 벼룩시장 같은 거 찾아봐도 관악구 쪽엔 그런 게 없는 거 같아요. 혹시 관악구에 인력소개소 같은 거 어디 있는지 아시는 분.. 혹은 노가다 해보신 분 위치 좀 갈켜 주세요 -다음 2009.1.19-

불황의 골이 깊어서인지 방학기간에 노가다 일자리를 찾는 학생들이 많다. 흔히 공사판 막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 ‘노가다’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노가다(<일>dokata[土方]) :「1」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2」 막일「3」 막일꾼. ’으로 나와 있다. 원래 일본발음은 ‘dokata, 도가타’로 소리 나는 것을 ‘노가다’로 들여다 쓰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어에는 없는 뜻인 ‘불량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는 게 재미나다. 일본국어대사전<大辞泉>에는 ‘どかた【土方】:土木工事に従事する労働者。土工’으로 되어 있는데 번역하면 토목 공사에 종사하는 노동자. 토공이라는 뜻이다. 가꾸목(각목), 가다(틀, 본), 가다와꾸(거푸집), 가이당(계단), 간나(대패), 기리(송곳), 노미(끌), 아시바(발판), 함바(공사판 식당).....그리고 노가다(막일꾼)처럼 토목이나 건축 관련 말에는 유달리 일본말 찌꺼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일제 강점기를 통해 들어온 서양건축을 짓기 위한 용어일 뿐 고대로 올라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법륭사 금당벽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구 78,000명의 소도시 나라현 이카루카정 (奈良県斑鳩町)에 있는 법륭사(法隆寺, 호류우지)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꼽히는 서원가람(西院伽藍)이 있다. 이것은 서기 607년에 만들어진 건물로 이를 포함한 법륭사 일대는 1993년 ‘법륭사지역의 불교 건조물’로 지정되어 유네스코 유산에 등록된 유서 깊은 곳이다. 이 절은 일본불교중흥의 시조라 불리는 성덕태자와 관련이 깊은데 태자를 가르친 사람은 고구려 혜자스님이다.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 지어진 이 절의 크고 작은 건축물들은 고구려자(高麗尺, 고마샤쿠)로 지어진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서 고마(高麗)는 고구려(高句麗)를 뜻한다. 당대 최고 통치자인 성덕태자의 스승 혜자스님과 고구려의 목수들은 고구려자를 이용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법륭사를 지었다. 21세기 기술로도 2~3층 건물을 지으려면 한두 명의 기술자로는 어림없는 것처럼 1,400여 년 전 당시 최고의 가람을 짓는 데는 쟁쟁한 목수와 인부들이 상당히 동원되었을 것이다. 이때 막노동하던 사람들은 현지인인 일본사람들일 확률이 높은데 고구려 장인 밑에서 현대판 노가다를 했다고 보면 된다. 법륭사뿐이 아니다. 오사카의 사천왕사, 국보 1호가 안치되어있는 교토의 광륭사는 물론이고 나라의 동대사 등도 고대 한반도 목수들이 지휘하여 일본인 노가다들을 동원하여 지은 건축물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저명한 불교사학자 다무라엔쵸 박사(田村圓澄)는 《고대 조선불교와 일본불교, 古代朝鮮仏教と日本仏教, 吉川弘文館, 1980》에서 “불교 전래란 불상, 경전, 승려의 3보 외에 3보를 모실 수 있는 가람, 그리고 가람에서 행해지는 종교의례와 학문, 건립에 힘쓰는 기술자와 제작자, 회화, 조각, 음악, 무용을 담당하는 예술가 집단을 포함한 문물이 전래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백제로부터 일본에 정식으로 불교가 공인된 것은 서기 552년(538년 설도 있음)으로 오사카의 사천왕사(593), 교토의 광륭사(603), 나라의 법륭사(607) 등을 일본인 스스로 짓기에는 역부족인 때였다. 이후 동대사(東大寺)의 유명한 로사나불상(盧舎那仏像)이 완성되는 758년까지도 일본은 한국인 목수를 쓰거나 행기와 같은 재일한국인 승려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자체적인 건축술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뛰어난 건축장인 밑에서 노가다부터 시작한 일본의 건축기술은 그들의 섬세하고 꼼꼼한 노력으로 후손들에게 전수하여 19세기 말 어수선한 세계사 흐름 속에서 한반도로 건너와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용 토목공사를 하면서 우리 겨레를 다시 노가다로 동원하여 숱한 일본말 찌꺼기를 남기고 돌아갔으니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일본 전통건축(社寺建築)의 대목수인 이토헤이자에몽(伊東平左衛門, 1829-1913)은 그의 저서 《고건축비화, 古建築秘話, 鳳山社, 1962》에서 고구려자(高麗尺)가 법륭사 건축을 둘러싼 재건, 비재건 논쟁을 잠재웠다고 높이 추켜세운다. 이는 법륭사 건물이 창건 당시 그대로인가 아니면 일본서기에 기록된 670년에 불타서 새로 재건한 가람인가 하는 일을 두고 건축계와 역사계가 팽팽한 논쟁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그는 여기서 법륭사가 창건 당시 모양을 그대로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는 고구려자(高麗尺)를 사용한 건축기법임을 들고 있다. 고구려자가 당시 사원건축물의 중요한 척도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새삼 들먹일 필요도 없지만 건축물의 주도권을 쥐고 설계에서부터 시공을 지휘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분명하게 대변하고 있다. 그러한 막강한 건축설계팀을 보유한 한반도 건축기술자들의 대활약상은 지금 오사카, 나라, 교토의 숱한 건축물들이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우린 그런 나라였다.

그런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일본말 찌꺼기를 버리지 못하고 예사로 쓴다는 것은 뛰어난 조상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다. 흙일을 하는 사람인 도가타(土方)에서 나온 말 <노가다>는 ‘공사판 노동자’, ‘노동자’, ‘막일꾼’ 같은 우리말로 순화해서 써야 할 것이며 다시 한 번 1,400여 년 전 뛰어난 건축술로 일본의 막일꾼인 노가다를 다루던 조상을 기려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