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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국기 교체 주장에 대한 반박

   

흔히 태극기가 중국의 태극도설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학설입니다. 중국에서 주렴계가 태극도설을 발표하기 약 400년 전부터 우리는 이 도형을 신비의 부호로 국가기관이나 개인이 쓰고 있었다는 것이 여러 가지 역사적인 유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주렴계가 처음으로 태극도설을 발표한 것은 송나라 신종 때의 희령 초기로서 우리나라 고려 문종 24년경에 해당하며, 서기 1070년경입니다. 그런데 1959년 12월에 국립박물관에서 발굴한 신라시대의 절인 감은사 장대석에 새겨진 태극도형은 당나라 개요 2년인 서기 682년(감은사 준공년도)으로서 주렴계가 태극도설을 처음 발표한 시기보다 388년이 앞서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정주학의 수입은 서기 1314년인데 그보다도 170년을 앞선 서기 1144년에도 태극 도형이 발견되었으니 고려 인종 갑자년에 죽은 호부상서 검교태위 허재의 석관 천판天板무늬 한가운데에 새겨진 태극 도형입니다. 이 석관은 일본 강점기에 고려자기를 발굴할 목적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고분들을 캐내던 일본 도굴대가 발굴한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태극 도형은 중국의 주렴계가 태극도설을 제창하기 388년 전에 이미 사용되었고, 허재의 석관에 새겨진 도형은 정주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170년 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이 두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도 태극 도형은 우리 민족의 신성한 부호로 주렴계 이전부터 사용됐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중국의 태극도설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극기는 고종 20년 1883년 3월 6일 정식으로 국기로 제정, 반포하였습니다. 그 후 청홍 태극도에 건, 곤, 이, 감, 4괘를 배치한 것을 국기로 사용한다.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고종 황제가 청나라 이홍장과 마건충의 제의에 결단코 청국의 황룡기黃龍旗를 모방할 수 없다고 거절하면서 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도를 적, 청색으로 그리고 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의 괘를 붙여서 조선의 국기로 정하였습니다. 또 ≪사화기략≫에 ‘일찌기 그렇게 하도록 왕명을 받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국인 제임스 선장에게 자문했을 수는 있겠으나 그야말로 자문에 불과한 것이지 제임스의 의견을 따라 4괘를 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회 일각에서는 태극기 교체론이 심심찮게 대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국기를 바꾸자는 헌법소원까지 낸 일도 있습니다. 교체를 주장하는 이유는 태극기가 우리 것이 아닌 중국 것이라는 점과 미신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과 뜻이 난해하다는 점, 또 태극기가 원리에 맞지 않게 그려져 있다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이유에서든 국기교체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설사 앞으로 바꾸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논의 시기가 아니며 남북이 통일된 후에나 거론될 사항일 것입니다.

독자 반재원 / 훈민정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