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은 달이 해의 일부나 전부를 가리는 현상이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은 일식을 하늘의
경고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치게 하기 위해 ‘구식례(求食禮)’를 행했다고 합니다. 세종임금도 구식례를 하려 했지만 중국의 기준에 맞춘 예보는 1각(一刻:한 시간의 4분의 1, 즉 15분)이 빗나갔고, 예보관에게 장형(杖刑:죄인에게 볼기를 치던 형벌)이 내려졌습니다. 이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세종임금은 정인지와 장영실을 시켜 천문기구와 시계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 때 만들어진 천문기구와 시계들은 북극고도를 측정하기 위한 ‘간의(簡儀)’, 밤 시각도
측정하기 위한 일종의 해시계 겸 별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이동하는 군사들을 위한 휴대용 해시계 ‘천평일구(天平日晷)’와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自擊漏)’ 등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