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문신 이정암이 황해도 연안성에서 왜적을 맞아 싸우게 되었습니다. 성안에는
5백의 군사가 있었고, 쳐들어온 왜병은 3천 명이 넘었답니다. 그는 섶을 쌓고 그 위에 앉아 지휘했는데 성이 함락되면 스스로 불을 질러 타죽겠다는 것이었지요. 합심하여 나흘간을 죽기 살기로 싸웠습니다. 죽고 부상한 왜병이 반이 넘자, 왜병은 마침내 연안성을 포기하고 떠납니다. 이 연안성 싸움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거둔 몇 안 되는 승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침내 보고서가 조정에 닿았는데, ‘신은 삼가 아룁니다. 적이 아무 날에 성을 포위하였다가 아무 날에 포위를 풀고 떠나갔나이다.’ 단 두 줄뿐이었습니다. 자기의 공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않는 이 이정암을 김육은 명신록에 올렸습니다.
참고 : <죽비소리> 정민, 마음산책
“朝廷聞公被圍, 上下憂危 及捷至, 只言賊以某日圍城解去, 一無張皇語. 議者言 : 却賊易, 不아伐功尤難” -김육(조선 중기의 문신)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