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개벽(開闢)의 아침
새벽이었다. 그러나 그 날의 새벽은 여느 새벽과는 달랐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되지 않는 아득함이 존재했다. 이순신은 고단한 몸을 뒤척이지 않았다. 단지 그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나직이 전방을 노려보았다.
“이 새벽은 개벽(開闢)이로다.”
꿈을 꾸었다. 아주 혹독한 한차례 폭풍과도 같은 꿈을 꾸었다. 조선에 참담함을 안겨 주었던 일본을 기습하고 천황을 사로잡았다. 자신을 모함하여 죽이려던 선조가 폐위되고 일본이 항복하였다. 조선의 왕조를 바꾸는 이순신의 반역이 모의 되었다. 그것은 모두 죄인의 신분으로 의금부 수옥(囚獄)에 감금되어 있을 때의 꿈이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꿈이다!’
이순신은 울컥 치솟아 오르는 노기를 삭혀야만 했다. 조선 천지가 일본의 야욕에 유린되어 셀 수 없는 사상자를 만들어 냈다. 그 뿐이랴. 조선으로 일본군을 따라 들어 온 노예상인들에 의해서 끌려간 남녀의 숫자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혹자는 오 만 명이라 했고 혹자는 이 십 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도예 기술로 이름 난 도공들이 있었고 철부지 어린 아이도 있었다. 부녀자들 또한 적지 않게 개처럼 끌려갔다. 그들은 일본상인들에 의해서 물건처럼 일본 전역으로 팔려 나갈 것이며, 또는 나라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외국으로 매매되어 노예로 전락할 것이었다. 부녀자들은 성 노리개가 될 것이며 사내들은 짐승처럼 혹독하게 부려질 것이다. 아이들 역시 예외 없이 모진 멸시와 학대 속에서 사람의 인성을 포기하고 살아가게 되리라.
“이런 육시랄!”
이순신의 입에서는 순간적으로 저자거리의 상인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음직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의 막연했던 눈빛은 이때 붉게 충혈 되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는 그러한 참상에 기인되어 위태로웠다.
“그런 미친 작자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이순신은 오직 그 하나의 일념이었다. 그런데 그 왜적의 만행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거대한 벽을 우선 허물어야 했다. 깨부숴야 했다. 그것은 임진원년 초부터, 아니 훨씬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조선의 최고 권력(權力)이었다. 그 권력은 늘 이순신의 주변을 감시하고 경계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순신의 목에 질긴 올가미를 거는데 성공하였다. 이순신의 장계를 숨기고 그를 모함하여 올가미의 끈을 당겨 이순신의 숨통을 끊어 놓고자 했었다.
그러나 난 죽지 않았다.’
이순신은 조선의 막강한 권력에서 살아남았다. 그래서 그가 용서할 수 없는 부류는 두 가지로 나뉘어 졌다. 하나는 일본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선이 되어 버렸다. 일본의 침략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권력을 붕괴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적은 두 줄기였고 이순신은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에 그것을 직감(直感)했다.
“그들은 두 개의 하늘이다. 내가 용서할 수 없는 그것들은 너무 위대하고 너무 위태롭다. 난 그 두 개의 하늘을 이제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순신의 각오는 파국(破局)을 예고하고 있었다. 두 개의 하늘은 두 개의 천적(天敵)이다. 하나의 하늘을 상대하기에도 버거운데 두 개의 하늘을 개벽해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일본을 제압하기 위해서 조선의 최대 권력 역시도 주적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하는 현실이 비극이었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