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서아지가 그를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날 찾고 있소?” 도도총대장의 복장을 하고 있는 인물을 발견한 와키자카의 두 눈이 밥공기처럼 커졌다. 너무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너......넌, 누구냐?” “난 서아지라고 하외다.” “도도총대장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김충선이 냉정하고 단호하게 결정지었다. “가서 만나보십시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김충선은 전혀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둘렀다. 피가 튀어 오르며 임진년 내내 조선 수군을 괴롭혀 왔던 일본 장수 와키자카의 목이 뎅강 떨어져 굴렀다. 너무나 간단한 죽음이었다. 김충선은 즉각 도도의 목도 가지고와서 와키자카의 목과 함께 장대에 매달아 높이 들고 흔들었다. 일본수군의 총대장과 대장의 목이 동시에 장대 끝에 매달려 흔들리는 광경은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 “이야, 역시 대장의 머리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그들이 목격만 한다면!” 서아지와 준사가 김충선의 탁월한 순발력에 탄성을 토해냈다. 그들도 갑판위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장대 끝을 손가락질 했다. 조선수군에게 제대로 신호를 보내야만 포탄세례를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들의 노력은 기어이 통하게 되었다. “가만, 저게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급보입니다. 도도는 이맛살을 찌푸렸고 가토가 날카롭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전령이 무릎을 한쪽 꿇으며 고개를 꺾었다. 벽파진의 조선 판옥선이 행동을 개시 했습니다. 도도를 비롯한 구루시마와 가토, 와키자카 등의 반응이 각기 다르게 튀어 나왔다. 조선 수군이 먼저 움직여? 이순신이 또 무슨 꿍꿍이를 부리는 건가? 하하핫, 그냥 가만히 앉아서는 당하지는 않겠다는 건가? 재미있군...이순신! 구루시마가 총대장 도도에게 엄중한 기색으로 만류했다. 신중해야 합니다. 이런 때 일수록 좀 더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도도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주력함 판옥선은 겨우 십 여척이 전부라고 들었소. 조선 수군은 칠천량의 패배를 절대 회복할 수 없소. 조선 수군의 사기는 완전 밑바닥일 것이고, 우리는 자신감이 충만하오. 우리 함대는 저들의 수 십 배에 달할 것이요.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구루시마는 담담한 어조로 답하였다. 인유불위야(人有不爲也) 이후가이유위(以後可以有爲)라 하였습니다. 평생을 싸움터에서 사람만을 죽여 왔던 도도와 가토, 와키자카가 맹자(孟子)의 글귀를 알 리가 만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장군, 소생이 이번 전투에서 원하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닙니다. 정도령은 출정 직전의 이순신을 방문하였다. 그는 묵묵히 갑옷을 착용하는 이순신을 거들며 다시 강조했다. 적선을 파괴하고 도주하게 하는 그런 승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럼 군사가 원하는 승리는 어떤 것이요? 이순신이 물었다. 섬멸(殲滅)! 정도령은 짧게 응답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명량에서 일본 수군을 모조리 전멸 시켜야 한다는 요구였다. 단지 13척에 불과한 판옥선으로 정도령은 너무나도 어이없는 요구를 해 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의 대답 역시 걸작이었다. 그러지요. 정도령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옵니다. 이들 군신의 대화는 마치 어린아이들의 유희와도 같았다. 철없는 아이들의 말장난과도 흡사했다. 단지 13척의 배로 일본 함대를 어찌 전멸 시킬 수 있겠는가. 일본 함대의 선박 숫자는 300 척이 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군사가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지 않소? 감사는 내 몫이 아니요? 이순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도령은 이순신의 면전에 바른 자세로 섰다. 새 하늘을 여는 역사적 개벽(開闢)에 첫 문을 열 개 해 주는 영광을 소생에게 안겨 주시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선조는 탄식처럼 뱉어냈다. 심중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것이리라. 서애 유성룡은 왕 선조의 불행함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었다. 사실 그는 왕으로서의 역할이 그리 부족한 인물은 아니었다. 만일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선조는 그런대로 왕의 체통을 유지하며 왕조를 무난히 이끌어 갈 수도 있는 존재했다. 선조 이연에게 그 정도의 영민함은 존재했다. 평화의 시기가 아닌 난리에서는 왕 선조는 무용(無用)하다. 고 유성룡은 생각하였으나 입 밖으로는 절대 꺼내 놓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불쑥 임금이 물었다. 이순신의 가복 한 명이 영상을 방문하였다는데 사실이요? 유성룡은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하였다. 이순신을 섬기고 있는 부하 정경달이 서신을 지니고 찾아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이순신이 백의종군의 신분에서 다시 통제사로 임명되기 전의 일이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정황을 선조가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찰(査察) 당하고 있구나! 라고 단정하였다. 선조는 이순신과 유성룡의 관계에 대해서 여전히 집요한 관심을 두고 있음이 확인 되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는 전 종사관 정경달이라고 자신을 소개 했습니다. 서애 유성룡은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
-조선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왕 선조가 포기한 나라이다. 과연 그 나라에 어떤 가치가 존재 하겠는가. 왕이 나라를 포기 하였다면, 그 나라 역시 왕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특히 이분은 통역에 능숙하여 명나라 장수들이나 일본의 패잔병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순신에 대한 항간의 소문을 섭렵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순신을 조선 최고의 장수로 지목함에 있어 망설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조선 왕 선조가 이순신에 대한 백성의 신망이 두려워서 그를 모함하여 참수(斬首)하고자 한다는 만행을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 드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실 이분은 이순신이 의금부로 압송 당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이순신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날은 1597년 정유년 2월 중순이었다. 바람이 차갑고 세우(細雨)을 동반한 먹장구름이 하늘을 종횡하던 험악한 날씨였다. 숙부님, 미련을 두지 마소서. 결행 하시지 않으면 오로지 죽음뿐이옵니다. 그럼 당하면 되지 않느냐. 그까짓 죽음이란 것. 명예롭고 값진 죽음이 아니라 그것은 허망한 죽음입니다. 무엇이 명예롭고, 무엇이 허망한 것이더냐? 죽음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니더냐. 왜 이러십니까? 구국의 명장으로
[그린경제/ 얼레빗 = 유광남 작가] 도원수 권율의 명령에 의해서 조선의 전 함대가 공격 대형으로 출전한다는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기선을 제압하는 것은 병법에 있어서도 으뜸이지만 금일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도원수 권율과 통제사 원균 사이에서 벌어졌던 파행에 대하여 조카 이분이 찾아와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한 것에 대한 이순신의 반응이었다. 이분은 역관(譯官) 출신으로 외교에 능숙하며 이순신을 보좌하여 명나라와의 통역을 담당 했었다. 장군, 고정하십시오. 육군은 어찌 행동한다는 것이냐? 조선 수군만이 출동하는 것으로 압니다. 이순신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일본 수군의 수뇌부에 대해서 혹시 들은 바가 있느냐? 이분은 숙부 이순신의 신색이 극도로 심각하게 변하자 당혹스러웠다. 이순신의 장자인 이회와 이완 등도 매우 긴장된 모습으로 이분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도 다카토라를 비롯한 구루시마 미치후사, 오키사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 등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일본의 해적 출신으로 바다 물길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는 자들이다. 수전(水戰)에 능숙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조선 함대가 위험한 것
누르하치는 스스로 반문하는 형국이 되었다. 방금 전만 하여도 김충선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여진을 방문한 목적을 사적인 행위로 규정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졸렬한 짓이며 비겁한 짓인가?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변절하는 것은 군자답지 못한 행위로 소인배나 하는 일로 여기는 누르하치였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직감을 확신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인가? 이번에는 오히려 김충선이 누르하치의 견해를 반발하고 나서지 않는가. 이 작자는 당연히 누르하치의 생각에 백 번이고 동조해야 마땅한 노릇이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든지 교활하게 간이고 쓸개고, 어디든지 달라붙을 위인으로만 생각 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번에는 누르하치를 상대로 배짱을 부린다. 분명히 대답 올릴 수 있습니다. 조선은 정복하기가 진정 불가능한 나라이옵니다. 여진이 조선을 주적으로 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옵니다. 굽어 살피옵소서. 감히 여진의 칸에게 맞서려는 것이냐? 칸이시지요. 암요, 당연히 칸이 되어야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경솔한 행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고약한 위인이었다. 어설프게 측정 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의 인물이었다.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하지만 김충선은 별로 난감해 하지도 않았고,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변호 하려는 일패공주에 대해서 고마운 심정이었다. 또한 패륵 역시 적의의 시선을 거두고 있다는 것에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 문제는 꼬마 홍타이시였다. 어서 화살을 장전하지 않고 뭐하누? 홍타이시는 제법 거만하게 내뱉었다. 왕자님, 송구하옵게도 이 사람이 조선에서 달려오면서 미처 소생의 활을 챙겨오지 못했습니다. 화승총만 소유하고 있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든 것이 오늘날의 낭패를 안겨 주는군요. 김충선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홍타이시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무슨 뜻이요? 소생이 활을 준비하지 못했으니 대신 다른 활을 사용할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강궁이 필요합니다. 강궁이라? 창공을 비행하는 독수리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일반 활로는 무리옵고 반드시 강궁으로만 가능하옵니다. 일패공주는 순간적인 김충선의 기지에 내심 감탄했다. 이 사람을 용맹한 장수로만 생각하고 있었거늘...... 이런 임기응변을 지니고 있었군. 패륵 역시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김충선의 노련함에 고개를 저절로 끄덕였다. 홍타이시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냐? 어린아이답지 않게 홍타이시는 제법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찌푸려진 콧등이 귀여움을 더했다. 김충선이라 합니다. 김충선은 예의를 다하였다. 비록 어려 보였지만 왕도의 풍모가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홍타이시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래? 우릴 감동시킬 자신이 있다고? 최선을 다할 따름이지요. 그보다 중요한 일은 별로 없다. 하늘과 땅에 맹세코 부끄럽지 않게 정성을 다한다면 그 누구도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야. 김충선은 내심 탄성을 토했다. 5살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린 홍타이시는 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격려, 감사합니다. 천만에, 모처럼 귀한 손님이시니 기대가 클 뿐이야. 홍타이시는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면서 막사를 나섰다. 김충선은 경탄의 실소를 흘리면서 그 뒤를 따랐다. 이미 막사 밖에는 패륵을 비롯한 일패공주 등 누르하치의 왕손들이 진을 치고 김충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과연 김충선이 어떤 행동을 보여줄 것인지 잔뜩 기대하는 시선들이었다. 김충선은 칭칭이 하얀 천으로 감겨진 석 자 길이의 화승총을 봇짐에서 풀었다. 저것은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조총이란 병기 아닌가? 패륵이 한 눈에 알아봤다.
[그린경제/얼레빗 유광남 작가] 당신은 정말 이기적이군요. 이기적이라는 지적을 받게 되자 김충선은 토끼구이의 비릿한 향기가 더욱 역겨웠다. 어린 철부지 시절, 바닷가 고향 해정에서 부친의 망치소리와 더불어 어머니의 속삭임은 한결같았다. 정의로운 사내가 되어라. 어머니는 조선의 어느 누구로부터 교육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어린 사야가 충선에게 그렇게 훈육하였다. 정의롭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적어도 그것은 이기적인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덕목이리라. 김충선의 일그러진 표정을 힐끔 살피던 일패공주는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이해 할 수 있어요. 이해 할 거예요. 아니, 어쩌면 이미 이해했는지도 모르겠군요. 나 역시 당신이라도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는 없었을 거예요. 김충선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마땅히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요. 사과도 받고, 용서를 빈다고 하니 그 또한 용서 하는 것으로 하죠. 역시 그녀는 대범하고 시원했다. 대륙의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본능의 기마 민족의 기질을 유감없이 지니고 있는 탓일까. 고맙소. 경직된 얼굴로 던지는 고맙다는 말은 별로 고맙게 들리지 않아요. 여전히 매섭구려. 일패공주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