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유광남 작가]
“당신은 정말 이기적이군요.”
이기적이라는 지적을 받게 되자 김충선은 토끼구이의 비릿한 향기가 더욱 역겨웠다. 어린 철부지 시절, 바닷가 고향 해정에서 부친의 망치소리와 더불어 어머니의 속삭임은 한결같았다. ‘정의로운 사내가 되어라.’ 어머니는 조선의 어느 누구로부터 교육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어린 사야가 충선에게 그렇게 훈육하였다. 정의롭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적어도 그것은 이기적인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덕목이리라. 김충선의 일그러진 표정을 힐끔 살피던 일패공주는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이해 할 수 있어요. 이해 할 거예요. 아니, 어쩌면 이미 이해했는지도 모르겠군요. 나 역시 당신이라도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는 없었을 거예요.”
김충선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마땅히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요.”
“사과도 받고, 용서를 빈다고 하니 그 또한 용서 하는 것으로 하죠.”
역시 그녀는 대범하고 시원했다. 대륙의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본능의 기마 민족의 기질을 유감없이 지니고 있는 탓일까.
“고맙소.”
“경직된 얼굴로 던지는 고맙다는 말은 별로 고맙게 들리지 않아요.”
“여전히 매섭구려.”
일패공주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화제를 돌렸다.
“아버님에게 보고를 올렸어요.”
“그것도 여전히 빠르군.”
“우리의 생명력은 정보예요.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나의 임무죠.”
일패공주를 조선에 침투시켰던 칸의 요구였으리라. 만주족의 일개족장에서 이제는 전 만주국을 통치하는 누르하치의 야망은 그렇게도 빈틈이 없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어린 딸을 무섭게 단련시켜 위험의 오지로 보낼 만큼 누르하치는 치밀하고 냉정했다. 일패공주 역시 그의 핏줄이니 만큼 평범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했고, 그것은 결코 빗나가지 않았다.
“날 만나 주시겠다고 했소?”
“아니요.”
일패공주의 입에서는 예기치 않았던 거절이 분명히 전해졌다.
“난 칸을 뵈어야 하오!”
김충선의 입에서 당혹성이 튀어 나왔다. 불원천리 달려온 것이 자칫 허사가 될 판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이순신의 개벽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칸이 물으셨어요. 조선의 재상도 아닌, 정식 사신도 아닌 일개 무장을 접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래서 난 대답을 드리지 못했어요.”
“우리의 뜻을 공주는 알고 있지 않소이까?”
“내가 안다고 해서 아버님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 건가요? 이미 그 믿음은 한차례 깨지고 말았잖아요. 두 번을 설득할 수 있는 재주도 없거니와 칸은 무너진 신뢰가 회복 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시는 분이에요.”
절망의 분위기가 김충선의 온 전신을 감싸고돌았다. 아득한 현기증이 아침 햇살 사이로 번뜩였다. 그러나 포기란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김충선은 은밀한 어조를 꺼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