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선조는 탄식처럼 뱉어냈다. 심중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것이리라. 서애 유성룡은 왕 선조의 불행함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었다. 사실 그는 왕으로서의 역할이 그리 부족한 인물은 아니었다. 만일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선조는 그런대로 왕의 체통을 유지하며 왕조를 무난히 이끌어 갈 수도 있는 존재했다. 선조 이연에게 그 정도의 영민함은 존재했다. ‘평화의 시기가 아닌 난리에서는 왕 선조는 무용(無用)하다.’ 고 유성룡은 생각하였으나 입 밖으로는 절대 꺼내 놓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불쑥 임금이 물었다.
“이순신의 가복 한 명이 영상을 방문하였다는데 사실이요?”
유성룡은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하였다. 이순신을 섬기고 있는 부하 정경달이 서신을 지니고 찾아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이순신이 백의종군의 신분에서 다시 통제사로 임명되기 전의 일이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정황을 선조가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찰(査察) 당하고 있구나!’ 라고 단정하였다. 선조는 이순신과 유성룡의 관계에 대해서 여전히 집요한 관심을 두고 있음이 확인 되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는 전 종사관 정경달이라고 자신을 소개 했습니다.”
서애 유성룡은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드렸다.
“어떤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었소?”
“일전 소신에게 청탁한 재임용에 관한 궁금증 이었습니다. 신은 이순신에게 이르기를 백의종군의 신분으로 본분을 다한다면 다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만 전했습니다.”
선조의 입 꼬리가 약간 뒤틀렸다.
“영상의 충고가 제대로 작용했구려. 하여간 이순신은 복직이 되었으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선조는 입맛을 다셨다. 서애 유성룡은 다소 씁쓸한 기분으로 어전을 물러나왔다. 왕의 감시가 예사롭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입구에 머물던 도승지 오억령과 내관 고명수가 눈인사를 건넸다. 유성룡은 그들이 대기하는 이유를 짐작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왕 선조는 또 어떤 모종의 모략을 획책할 것인가? 이순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전혀 논란의 가치가 없는 수군폐지론을 분명 확대할 것이었다. 좌의정 육두성에게 내린 어명은 그저 하나의 전시용일 가능성이 높았다. 유성룡의 계산이 복잡해졌다. ‘정도령에게 어서 알려야겠다.’ 유성룡이 내전을 나가기가 무섭게 도승지와 내관 고명수, 그리고 몸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사헌부 지평 강두명이 어전으로 모여 들었다. 왕 선조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도승지! 육대감에게 과인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시오. 이참에 수군은 폐할 것이니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꼭 성사 시켜달라고 말일세. 도원수부의 권율장군에게도 전교(傳敎)를 내려서 확정하고!”
“황공하옵니다.”
도승지 오억령은 왕의 어명을 받고 상선 고명수와 더불어 즉시 물러났다. 좌상 육두성을 만나서 수군 폐지에 대한 선조의 강경함을 설명한다면, 아마도 좌의정 육두성은 명나라 장수 마귀에게서 수군폐지에 대한 당위성만을 지니고 돌아오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절묘하게 구성된 선조의 각본에 의해서 조선 수군은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다.
“여진으로 보낸 선전관 조영에게 어떤 소식이 있느냐?”
강두명이 머리를 조아렸다.
“아직은 소득이 없사옵니다.”
“과연 그 자가 여진에 머물고 있을까?”
“확인할 길은 아직 없사오나 전하의 직감이 빗나갈 리가 있겠사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