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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대업의 장 92회

-조선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왕 선조가 포기한 나라이다. 과연 그 나라에 어떤 가치가 존재 하겠는가. 왕이 나라를 포기 하였다면, 그 나라 역시 왕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특히 이분은 통역에 능숙하여 명나라 장수들이나 일본의 패잔병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순신에 대한 항간의 소문을 섭렵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순신을 조선 최고의 장수로 지목함에 있어 망설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조선 왕 선조가 이순신에 대한 백성의 신망이 두려워서 그를 모함하여 참수(斬首)하고자 한다는 만행을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 드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실 이분은 이순신이 의금부로 압송 당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이순신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날은 1597년 정유년 2월 중순이었다. 바람이 차갑고 세우(細雨)을 동반한 먹장구름이 하늘을 종횡하던 험악한 날씨였다.

“숙부님, 미련을 두지 마소서. 결행 하시지 않으면 오로지 죽음뿐이옵니다.”

“그럼 당하면 되지 않느냐. 그까짓 죽음이란 것.”

“명예롭고 값진 죽음이 아니라 그것은 허망한 죽음입니다.”

“무엇이 명예롭고, 무엇이 허망한 것이더냐? 죽음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니더냐.”

“왜 이러십니까? 구국의 명장으로 일본의 왜적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동분서주(東奔西走) 하신 숙부님이 아니십니까?”

“임금이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이미 대역 불충이니 난 죽어 마땅하다.”

“그것은 왕이 왕 답지 못한 것이며, 조정의 신료들이 신료답지 못한 것임을 왜 모르십니까?”

이순신의 입가에 비감어린 실소가 잿빛처럼 흘렀다.

“분아, 너무 애쓰지 마라. 난 이미 각오했다.”

“누구를 위한 각오란 말씀입니까? 숙부님을 믿고 따르는 수군 병사가 3만이요, 그 백성이 3백만을 넘을 진데 어찌 위태로운 결정만을 남겨 두신단 것입니까? 부디 심사숙고(深思熟考) 하소서.”

“너 또한 김충선과 한 마음이로구나.”

“항왜 장수 김충선을 말함 입니까?”

이순신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눈가에는 잔잔한 슬픔도 내비치었다.

“그 놈이 내게 통곡하며 감히 비장하게 소리쳤다. 새 하늘을 열어야 한다고!”

이분은 전율을 느꼈다. 자신이 감히 발설하고자 했던 외침이었다. 감동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서 이분의 전신을 자극하였다.

“숙부님에게 천명이 떨어지셨군요.”

이순신의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후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미묘함이 입 꼬리에서 머물다가 사라졌다.

“그 놈의 목을 베어야 했다. 나 이순신을 역적(逆賊)으로 삼으려고 했던 작자를 난 반드시 처단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리하지 못했다. 왜 단 칼에 목을 베지 못했는지 넌 혹시 알 수 있겠느냐?”

“김충선의 진의를 발견하셨기 때문이 아닌지요?”

“그건 아니다.”

“하시면......?”

“나의 오만함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