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하지만 김충선은 별로 난감해 하지도 않았고,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변호 하려는 일패공주에 대해서 고마운 심정이었다. 또한 패륵 역시 적의의 시선을 거두고 있다는 것에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 문제는 꼬마 홍타이시였다.
“어서 화살을 장전하지 않고 뭐하누?”
홍타이시는 제법 거만하게 내뱉었다.
“왕자님, 송구하옵게도 이 사람이 조선에서 달려오면서 미처 소생의 활을 챙겨오지 못했습니다. 화승총만 소유하고 있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든 것이 오늘날의 낭패를 안겨 주는군요.”
김충선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홍타이시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무슨 뜻이요?”
“소생이 활을 준비하지 못했으니 대신 다른 활을 사용할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강궁이 필요합니다.”
“강궁이라?”
“창공을 비행하는 독수리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일반 활로는 무리옵고 반드시 강궁으로만 가능하옵니다.”
일패공주는 순간적인 김충선의 기지에 내심 감탄했다.
‘이 사람을 용맹한 장수로만 생각하고 있었거늘...... 이런 임기응변을 지니고 있었군.’
패륵 역시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김충선의 노련함에 고개를 저절로 끄덕였다. 홍타이시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하였다.
“내게 지금 강궁을 가져다 달라고 요구 하는 것인가?”
김충선은 이제 천연덕스럽기까지 하다.
“왜 아니겠습니까? 활로서 독수리를 잡는 광경을 보고자 하시지 않았습니까.”
낭패감이 홍타이시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강궁은 삼겹실에 240가닥 이상으로 꼬은 막강한 탄력을 지니고 있는 활로써 당기는 힘이 보통 이상이 되어야 한다. 웬만한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무기였다. 따라서 이런 병기를 평상시에 사용하는 장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김충선은 누루하치 정도가 되어야 강궁을 소유하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버님에게 빌려오겠어.”
홍타이시가 말했다.
“기다리겠습니다.”
김충선이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홍타이시는 재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4명의 경호 무사들이 허겁지겁 따랐다. 홍타이시는 혹시나 김충선이 꽁지를 빼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는 김충선이 낭패를 당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감히 우리 누님을 꼬셔대다니! 내가 용서 못한다.’
일패공주가 걱정되어 물었다.
“강궁을 가져오면 어쩌시려고요?”
“쏴야지요.”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를 명중시키겠다고요? 화승총이라면 모를까 강궁으로는 어림없어요. 공연한 짓이어요.”
“날 신뢰하지 못하는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