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선아!”
이순신의 부름에 젊은 조일인(朝日人) 김충선이 한 걸음에 달려와 엎드렸다.
“하명하소서.”
그러나 이순신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떤 말들을 쏟아내야 하는 것일까. 이순신의 그런 신중함에 김충선 역시 결코 서둘지 않았다. 그는 추호의 흐트러짐 없이 이순신이 발아래 조용히 머물며 기다렸다.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구나.”
한 동안 침음하던 이순신이 내 뱉은 말이었다. 김충선은 그 순간 마치 흔적도 없는 사람처럼 호흡도, 움직임도 일체 멈춰져 버렸다. 이순신의 꿈이 어떤 것이었던가? 김충선이 도모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새로운 하늘을 열고자 하시옵니까?”
김충선은 확인하듯 조용히 되물었다.
“그래. 그러나 두 개의 하늘을 개벽해야만 새로운 하늘이 열려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니겠느냐.”
두 개의 하늘. 두 개의 나라.
“세 개의 하늘이 아닌 것이 다행스럽지 않습니까?”
김충선은 진지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이순신이 무섭도록 진지하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세 개의 하늘일 수도.”
그때서야 김충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해냈다. 일본과 조선 외에 하나가 더 추가 되었다. 등골에 소름이 식은땀과 함께 돋아났다.
‘또 하나는 어디인가? 설마...? 설마.......?’
김충선의 상념은 긴 꼬리를 물고 의혹의 안개더미를 더듬었다. 이순신이 그의 놀라운 상상을 가만히 자극했다.
“새 하늘을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개의 하늘을 제거해야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하늘은 그 어떤 하늘보다도 높고 위험하다.”
“병법에 이르기를 주적의 수를 많이 두는 것은 어려움을 자초하는 길이라 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그런 상황이라면 우선 최대의 전력으로 단시간 내에 가장 허약한 적을 먼저 섬멸하는 것이지요. 주적을 빠르게 줄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다.”
이순신은 짧게 대꾸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장군?”
김충선은 돌연한 이순신의 행동에 의혹을 보였다. 이순신은 의관을 차려입으며 지시했다.
“채비하여라.”
이 새벽에 어디로 출타 한단 말인가?
“행선지가 어디 옵니까?”
“알아 맞춰 보거라.”
이순신은 느닷없이 수수께끼라도 내는 악동처럼 웃었다. 김충선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