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대감입니까?”
이순신은 웃지 않았다.
“재미없구나.”
“잘 못 짚은 것입니까? 소인이?”
“너무 잘 맞춰서 즐겁지 않다는 뜻이었다.”
김충선은 머리를 조아렸다. 조선의 왕 선조의 모함으로 34일 간을 체포 투옥 되었던 이순신은 방면된 첫 날 새벽 화두와도 같은 두 개의 하늘로 말문을 열었다. 두 개의 하늘을 새롭게 열어야 한다는 것은 젊은 김충선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회(感懷)가 뜨겁게 피어올랐다. 두 개의 하늘은 조선과 일본이었다. 김충선이 그토록 소망하던 대업(大業)을 이순신은 자유의 몸이 되어 풀려난 이 새벽에 비로소 응답한 셈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하늘은? 세 개의 하늘이라?’
김충선은 조선과 일본 외의 또 다른 나라를 지칭하는 이순신에 대하여 경이로움과 동시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백의종군 신분이 된 이순신은 어제의 이순신이 분명 아니었다.
“나는 이제 결정하였다.”
이순신은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나머지 하나의 하늘까지 도모하고자 하신다면 그것은 너무 무모한 개벽이 아닐 런지요?”
김충선은 조심스럽게 물었고 이순신은 빙그레 웃었다.
“새 하늘을 열고자 하는 개벽은 본래 무모한 법이다. 하나의 하늘을 열기 위해서는 다른 두 개의 하늘 역시 개벽이 불가피하다.”
이순신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한 달여 기간의 감금 생활로 여위어진 몸은 짚단처럼 가벼워 보였으나 예기(銳氣)는 극도의 서늘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정치적 의중 역시 완전히 변화된 자세였다. 그 결심이 어디에서 기인(起因)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실로 경천동지(驚天動地)라 할 만한 변화였다.
“소신이 앞 장을 서겠나이다.”
김충선이 몸을 뒤로 물렸다. 이순신이 성큼 그의 뒤를 따랐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역천(逆天)을 위한 행보가 시작 되었다.
“궁금하지 않으냐?”
이순신의 물음에 김충선은 대답했다.
“몹시 궁금합니다.”
그토록 역모(逆謀)에 대한 주장을 강력하게 권하였으나 이순신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이순신은 조선의 왕 선조의 칼을 온 몸으로 받고자 했다. 억울하였으나 반항은 죽음보다도 더한 불충이었다. 이순신은 그랬었다. 그래서 김충선은 통곡하고 몸부림쳤었다. 어떠한 두려움도 죽음의 결정 앞에서는 티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이순신의 심경에 변화가 찾아 온 것일까?
“꿈이라 너무 허망하였다.”
김충선은 이순신이 꾸었던 꿈을 잠시 추측하였다.
“그러셨습니까?”
“허무한 꿈으로 그냥 두고 싶지 않다.”
김충선의 심장이 요동쳤다.
“지당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