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이순신의 경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예외가 있었다면 그래도 임진년의 전쟁 때문에 많이 참아 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조일전쟁(임진왜란)을 통하여 이순신이 영웅으로 탄생하자 선조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조급한 불안증으로 어전회의를 제대로 해 나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백성들에 대한 이순신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자 선조는 이탈하는 민심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았다. 그는 이순신에 대해서도 김덕령과 같은 함정을 팠다. 하지만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순신은 치밀한 전략가인 동시에 꼼꼼하고 섬세한 기록자였다. 이순신의 숨겨졌던 장계! 그것의 폭로 때문에 이순신은 김덕령과 다르게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희들이 이 새벽에 찾아올지 알고 계셨다면 능히 연유도 아실 터이지요.”
김충선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유성룡이 답했다.
“함부로 입에 올릴 까닭은 아니지.”
이순신은 이제 침묵하지 않았다.
“대감, 내게 길을 인도하소서.”
유성룡은 깊은 상념의 시선을 이순신에게 고정하였다. 과하지도, 모나지도 않은 눈빛이 이순신의 전신을 훑었다. 34일 간의 감옥 생활로 이순신은 피로가 누적되고 쇠약한 몰골이었다. 유성룡은 가슴이 미어져왔다. 오로지 나라와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지키고자 전력을 다해 왔던 무장(武將)이 아니던가. 그가 이끌었던 함대는 무적으로 남해의 수호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췌하기 짝이 없는 환자와도 같았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무기력은 유성룡을 암담하게 만들었다.
“누구에게 길을 묻는 건가?”
고함에 가까운 소리가 유성룡에게서 불쑥 튀어나왔다. 일행은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감?”
김충선 역시도 긴장하였다.
유성룡은 다시 재촉했다. 여전히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누구에게 길을 묻는 것이냐고 물었소이다.”
유성룡은 평소와 달랐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매우 과격한 언행이었다. 아들 유진은 부친의 그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목격한 바가 없었다. 유진은 갑자기 엄습하는 긴장감으로 온 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김충선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돌발적인 유성룡의 모습에 숨소리조차 마음대로 내 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왜 유성룡이 거침없는 화두(話頭)를 갑자기 토해내는지 영문을 몰랐다.
“난......”
그때 이순신의 입이 열렸다.
“우리의 하늘을 열고 싶소!”
이순신 역시 어제의 이순신이 아니었다. 김충선이 알고 있던 그 장본인이 아닌 듯싶었다.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무장되어 있던 일개 장수가 아니었다. 그는 유성룡의 절규(絶叫)에 드디어 응답했다. 결코 뱉어내고 싶지 않은 진심을 비로소 당당하게 꺼내 놓았다.
“아!”
김충선은 선문답(禪問答)과도 같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성룡은 바로 이순신에게 당당한 왕도(王道)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타인에게 의지하여 길을 묻지 말고 본인의 과감한 의지를 천명하여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야 하는 신념을 보고자 했다. 유성룡은 그러나 외면했다.
“그대에게 무엇이 있소?”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