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대감은 불가사의하구나.’
김충선은 유성룡에 대해서 새삼 경외심을 지닐 수밖에는 없었다. 동시에 이순신에 관해서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순신은 34일 간의 옥중 생활을 마무리하고 출옥 한 후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순신의 나라를 위한 왕도(王道)를 걷게 되리라.’
이순신은 유진을 잡아 일으켰다.
“조선의 희망은 자네와 같은 젊은이라네."
"부족함이 많사옵니다.“
“그럴 리가 있는가? 대감께옵서 이 새벽에 자네를 내 앞에 세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조선의 동량(棟梁)을 내 눈으로 확인하라는 의도가 아니시겠는가.”
유진은 이순신의 어깨 너머로 서애 유성룡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장군을 뵙고 싶었습니다.”
“오호, 그랬던가?”
“임진년에는 소생의 나이가 열 살 이었습니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몰려오던 일본의 무리들이 무섭고 두려웠지요. 그때 처음으로 장군의 승전 소식을 피난길에서 들었습니다. 어린 소견에도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유진은 그 날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는지 감회(感懷)에 젖었다.
“그게 어디 이 사람의 공이던가? 자부(慈父)이신 대감의 안목(眼目) 때문이지. 한낱 종 6품의 지방 현감을 정 3품의 수사로 파격적 임용을 단행하셨던.”
무리하기 짝이 없는 인사(人事)였다. 유성룡은 당시 삼사(三司=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 ), 홍문관(弘文館))로부터 관작(官爵)의 남용(濫用)이라는 비판과 호된 질책을 당하였음에도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켜 이순신을 기어코 전라좌수사에 임명했었다.
“어떤 심정으로 그런 무모한 인사 용단을 내리셨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무려 일곱 계단의 직위를 뛰어 넘은 이순신의 지위에 대하여 김충선이 물었다. 유진 역시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부친을 올려봤다.
“그때의 심정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
유성룡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순신에게 삼도수군통제사의 지위를 다시 차지하라는 요구와 막중한 벼슬을 하사 했을 때와 심정이 같다는 것은 얼핏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유진은 이때 예사롭지 않았다.
“아버님은 장군에 대하여 무한한 신뢰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이순신은 부인하지 않았다.
“옳다.”
“그렇다면 장군께서는 반드시 복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옳은 일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 그렇고말고.”
이순신은 이제 약관(弱冠)의 유진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수고했구나. 넌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유성룡은 아들에게 분부했고 유진은 이순신과 김충선에게 차례로 읍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
“훌륭한 자제를 두셨습니다.”
김충선이 유진에 대하여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