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한 여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말임. 가야마스에코(香山末子, 1926-1996)라는 일본이름으로 《행주치마 노래》등 3권의 시집을 남기고 74살의 나이로 일본의 한센병요양소에서 1996년 숨을 거두었다. 김말임의 고향은 경상남도 진양군 진성면 온수리이다. 그 시절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연행길에 올라 큐슈 탄광지대의 중노동으로 시달렸거나 또는 조선총독부의 토지수탈로 논과 밭을 잃고 정처없이 떠나야 했던 것처럼 그는 먼저 건너간 남편 뒤를 따라 19살 꿈 많은 새댁으로 일본땅을 밟았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지독한 가난과 생활고에 이은 한센병 신세로 일본땅에 도착한지 3년 만에 어린 자식들과 헤어져 한센병요양소에서 지체장해와 실명이라는 불운으로 긴 투병생활에 들어간다. 썩어가는 몸과 눈까지 멀어버린 김말임의 수용소 생활은 필설로 구태여 옮기지 않아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23살의 나이에 한센병요양소에서 그가 그리던 경상도 온수리 고향 하늘은 언제나 구세주였고 어머니 품이었으리라!
그 한의 세월을 줄줄이 노래로 엮어 49살 되던 해에 《쿠사츠아리랑》1권을 시작으로 74살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도라지 시(노래)》,《푸른 안경》이란 3권의 시집을 세상에 남기고 눈을 감는다. 얼마나 고국의 푸른 하늘을 그리워했으면 ‘푸른 안경’이란 제목으로 시집을 엮었을까?
▲ 한센병이라는 이유로 모녀가 50년이나 떨어져 살아야했던 이야기를 딸 에노모토 씨가 츠시인권센터에서 강연하고 있다.(2012. 1. 23. 일본 중외일보), 《행주치마의 노래》시집 표지
이후 2002년에는 김말임의 70살 먹은 딸이 어머니의 유품을 모아 《행주치마의 노래》를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재일조선인으로 살다간 어머니의 한을 한 묶음의 실타래처럼 풀어놓게 된다. 일본 중일신문 (中日新聞, 2012.12.23)의 인터뷰에서 따님인 에노모토(70 살) 씨는 “세살 때 어머니와 헤어진 뒤 50년 만에 어머니와 재회했다. 어머니는 한센병 환자로 당당한 하나의 인간임을 깨닫지 못한 채 음지에서 부끄러운 병으로 여겼다” 고 했다. 에노모토 씨 역시 한센병으로 12살 때 오카야마(岡山)의 한 요양소에 들어갔다. 모녀로 이어지는 비극의 세월을 살아내면서 딸은 어머니와 다른 당당한 모습으로 한센병에 임했다.
어머니와 50년 만에 재회한 이듬해 어머니 김말임 (가야마스에코)은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딸은 “한센병문제를 생각하는 모임”에 나와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밝히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리던 고향의 노래 “푸른 안경 (靑いめがね)”을 감상해보자.(시 번역은 글쓴이)
스무 살에 일본에 건너와
올해 일흔두 살
그 사이 한 번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산도 들도 논밭도
눈에 하나 가득 밟힌다.
가을 저녁노을에 붉은 잠자리
노래하면
이웃집 아가씨
그 이웃의 이웃 아가씨도
모두 나와 노래했었지
벼이삭 끝에 앉은
빨간 잠자리와 메뚜기 녀석들
잠자리 눈은 크고 파랬다
둥글고 큰 안경을 쓴 눈 속에
고국의 시골 정경이
저녁노을처럼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