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최우성 기자] 독립문은 1898년 중국의 사신들이 영접하던 영은문과 모화관을 허물고 독립문과 독립관을 지었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으로하여 높이19m로 건축하였다. 서재필과 이승만이 주축이 되어 국민모운동을 펼쳐 자금을 마련하였다. 여기서 우리나라 최초의 만인공동회를 개최하여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처음 지어진 곳은 현재의 고가도로 밑이었기에 1979년 북서쪽으로 70m 이전하였으며, 서대운형무소 역사관과 함께 독립공원구역으로 포함되었다. 독립문의 앞에 서있는 작은 기둥 2기는 영은문을 받치던 주춧돌이었다고 한다.
사적 32호, 서재필이 스케치한 것을 독일공사관에 근무하던 스위스 기사가 설계하였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사.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본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 문화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