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선조의 탄식을 들으며 유성룡은 얼굴 색 조차 변하지 않고 말했다.
“이순신은 조정의 명을 받들지 않고 감히 신하 된 도리를 다하지 않아 의금부로 압송되어 감옥살이를 하였으며, 이제 백의종군의 신분으로 간신히 출옥하지 않았습니까? 이순신은 지난 한 달간 옥중에서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선조는 그와 같은 내용이 사실과 다름을 알고 있었다. 영상 역시 모르지 않을 일이었다.
“이순신과 같은 장수는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소.”
유성룡은 자신의 견해를 한 발자국도 물리지 않았다.
“신이 살펴 보건데, 이순신은 왕명을 거역한 죄를 뉘우치고 있으며 진심으로 함대 통제사로의 복귀를 희망하고 있나이다.”
“그건 불가하오.”
“소신 역시 그러한 청탁을 들어줄 수 없음을 분명히 했사옵니다.”
선조는 눈빛을 반짝였다.
“그랬더니요?”
“이순신은 매우 실망한 기색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항왜 장수 사야가 김충선이 이순신의 삼도수군통제사 복직을 강력히 요청해 왔습니다.”
선조의 눈에서 노기가 뿜어졌다.
“저런, 고얀 놈을 봤나? 김충선이란 작자는 대관절 어떤 놈이요?”
유성룡은 그에 관하여 비교적 소상히 설명했다.
“바다에서 이순신이 활략했다면 그 김충선은 육지에서 공로가 참으로 컸나이다. 의병들은 물론이고 조선 관군과의 연합 공격을 수차례 성공시켰으며 특히 화승총의 사용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선조는 이순신의 숨겨졌던 장계를 발굴하여 달려와 자신과 담판을 지었던 조일인 김충선의 모습을 떠올렸다. 대담한 사내였으며 문관으로의 기질도 풍부했다. 보통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자가 목숨을 담보로 하고 짐과 일전을 벌인 사실을 영상도 들었겠지?”
“어이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선조는 어좌(御座)에서 반쯤 몸을 굽혔다.
“그리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매우 중대했소.”
유성룡은 순간적으로 판단해야만 했다. 선조가 패기도 없고 우유부단하며 무능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참으로 오산이었다. 선조는 누구보다도 영악했으며 유순함을 가장한 잔인스런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서자 출신임을 스스로 감당하며 정국을 붕당정치(朋黨政治)로 요리하였다. 그는 심기(心機)가 무서운 왕이었다.
“중대한 사안으로 여기시옵니까?”
선조의 입가에서 음험한 기운이 내비쳐졌다.
“김충선은 이순신에게 몰입되어 있었소.”
유성룡은 바싹 긴장되었다. 선조의 둘째 아들, 왕세자 광해군의 모습이 스쳐갔다. 광해군을 하늘로 알고 섬기던 익호장군 김덕령. 그는 결국 광해군의 사람으로 충성을 맹서했기 때문에 선조에 의해서 수차례의 악형을 당해 온 몸의 뼈가 부러지고 힘줄이 끊겨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했었다.
‘아, 김충선이 위급하구나.’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