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그러나 유성룡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이순신을 향하던 선조의 표적이 김충선에게로 옮겨진 것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랐다. 하여간 이순신의 나라를 세우고자 전심전력을 다하는 김충선에게는 악재(惡材)였다.
“그들이 무엄하구려.”
유성룡이 선조의 노기를 가슴으로 품어 주었다.
“소신이 그들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일본의 재침략을 봉쇄하는데 있어서 중요 역할을 하게 된다면 자연 이순신은 본래의 위상을 되찾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랬소?”
“김충선이 장담했습니다.”
“뭐라?”
“상감마마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두 장수의 머리를 베어 버리겠다고 말입니다.”
선조의 용안에 호기심이 어렸다.
“어떤 자들을?”
서애 유성룡은 일본 장수들의 이름을 대었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이옵니다!”
선조는 그 순간 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하하핫...”
유성룡도 선조의 큰 웃음에 덩달아 따라 비웃었다. 선조는 아예 어좌의 모서리를 붙잡고 숨이 끅끅 넘어갈 정도로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왕의 위엄과 체면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끝내 왕의 눈에서는 눈물까지 비쳤다.
“짐이 이렇게 웃어본 적이 대체 얼마 만인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김충선, 그 자가 정녕 가등청정과 소서행장, 일본 제 1군과 2군의 장수들을 목 베겠다고 장담하였단 말이오?”
유성룡이 머리를 조아렸다.
“치기(稚氣)와 허풍이 대단하여 도저히 마음에 둘 수 있는 자가 아니라 여겨지옵니다.”
“그래도 배짱이 가상하지 않소?”
“소신은 그렇게 입만 살아있는 자들을 신뢰하지 않사옵니다. 말만 앞세우고 결국 책임을 지지 못하는 행동은 능히 사람의 가벼움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충선은 약간의 재간은 갖추고 있으나 용렬하다고 여겨지옵니다. 군자는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태산 같은 신중함이 있어야 하거늘 그 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선조는 유성룡의 말에 동의했다.
“짐 역시도 가당치 않은 호언에 통쾌하게 웃었소이다. 하여간 이런 웃음을 안겨줬으니 그것으로 그냥 만족하겠소.”
“상감마마의 은덕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선조는 흡족하였다. 이순신과 김충선에 대하여 너무 과민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냥 평범한 위인들이었다고 선조는 판단했다. 그러나 이런 결정에는 단 하나의 가정(假定)이 필요한 법이었다. ‘서애 유성룡의 보고가 진실일 때!’였다. 선조는 서애 유성룡을 신뢰했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학자로의 고고한 인품, 탁월한 외교 능력 등 일국의 재상으로 부족함이 없는 신하였다. 지난 30여 년간 조선을 다스려오기까지의 공로가 실로 막중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왕 선조의 믿음은 깊었으나 이미 유성룡의 견고한 뿌리는 이상 조짐이 발생하고 있었다. 유성룡은 더 이상 선조를 섬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