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선조의 비굴함이 용서되지 않았다. 이순신의 장계를 숨기고 그 충성스러운 무장을 제거하려 했던 행위에 대하여 부끄러웠고,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전 임진년 일본의 기습 공세에 밀려서 파천(播遷)을 단행 했을 때, 조선의 땅과 백성들을 버리고 명국으로의 망명을 하고자 했던 왕에 대하여 유성룡은 그 상실감에 통곡했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이 나라를 포기하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유성룡은 눈물로 애원하며 왕 선조를 붙들었다. 선조는 그런 유성룡에게 호통 했었다.
“짐이 살아 있어야 조선을 보전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곧 조선이 아닌가? 내가 이대로 적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면 그때는 끝이 아닌가? 짐이 저들에게 붙들려 항복하게 된다면 조선은 다시 회복할 수 없도다.”
유성룡이 호소했다.
“전하, 명나라로 피신하게 된다면 그것이 진정 조선을 포기하시게 됨을 모르옵니까? 조선을 선선히 일본에게 내주고자 하십니까? 만일 전쟁이 끝나고 조선이 수습되면 백성을 등진 왕을 누가 인정하며 받아 드리겠습니까? 그리고 명국 또한 조선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지니게 되겠습니까? 통촉하여 주옵소서!”
선조는 귀찮았다. 왕궁을 떠나 평양으로 의주로 피난하는 생활도 참으로 고달팠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참담한 고생이었다. 길도 서럽고 음식도 낮 설었다. 신하들과 백성들에게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달아나고 싶었다.
‘어쩌면 그때!’
유성룡은 자신의 왕을 더 이상 섬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조 역시 그리 호락호락한 위인이 아니었다. 그가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교묘한 처세를 해왔던가?
“영상,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유성룡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명 하소서.”
선조는 유성룡의 안색에서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아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믿어도 되겠소?”
유성룡은 의지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신의 뜻이옵니다.”
선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이 그때 날 막아줘서 고맙게 생각하오.”
유성룡의 가슴에 섬광이 스쳐갔다.
“상감마마?”
“그때 내가 더욱 고집을 부려서 조선을 떠났다면 다시 조선으로의 환궁이 어려웠을 것이 아니겠소? 종묘사직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 크나 큰 죄를 지을 뻔 했지요. 이번에도 영상이 날 잡아 주리라 믿소.”
유성룡은 가슴이 답답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왕 선조는 언제나 위태로웠다. 아니 어쩌면 그 불안함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성룡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척 하고 있으나 실상은 달랐다. 왕은 누구보다도 위기에 강하였다. 그는 그래서 지금도 강력한 상대이다.
“소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나이다.”
“그렇지요. 영상은 언제나 내게 최선을 다해 주었지요. 앞으로도 계속 부탁하오. 부족한 왕을 도와주시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