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상감마마 황공하옵니다.”
유성룡은 더 이상 선조와 마주 하기가 괴로웠다. 왕을 고립시켜 끝내는 파국으로 장식해야 하는 현실이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유성룡은 왕 선조에 대한 증오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성룡이 원하는 것은 조선다운 조선을 만드는 길이었다.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나이다.”
선조가 갑자기 제지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오.”
“예...전하.”
선조는 다시 몸을 굽혔다. 뭔가 중요한 용건이 있을 때의 버릇이었다.
“이순신과 김충선이 왜적과 여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계시오?”
유성룡은 뜬금없는 선조의 질문에 잠시 주춤거렸다. 의도를 알 수없는 물음이었던 것이다.
“짐작하기에 그들 여진과 왜적은 조선의 주적이 아니옵니까?”
“주적(主敵)이지요.”
“이순신과 김충선은 지난 6년 간 왜적을 상대해 왔습니다. 이순신은 훨씬 전 군관으로 변방의 여진족과 전투를 치룬 경험이 있사오나 김충선은 여진을 아직 알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유성룡의 답변을 들으며 선조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강두명의 보고에 의하면 김충선도 분명 여진이란 호칭을 땅바닥에 남긴 것이다. 그들은 과연 어떤 의미에서 조선의 주적들을 낙서하며 주고받았을까? 선조는 이순신과 김충선의 내막에 대해서 밝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유성룡이라면 혹시 제대로 짚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은 참기로 하였다. 선조가 판단하기에 이순신은 서애 유성룡의 사람이었다. 그러자 선조의 의심이 고개를 바싹 치켜들었다.
‘영상이 이렇게 달려와서 이순신과 김충선의 보고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유성룡이 물러남의 예를 취하였다.
“신은 상감마마께옵서 이순신에 대하여 많은 고뇌를 하고 계심을 알고 있나이다. 하지만 신의 안목으로는 더 이상 그러하실 필요가 없음이 분명해졌기에 달려왔나이다. 이순신은 전쟁 영웅이기는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목숨과 명예,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매달리는 지극히 평범한 위인이옵니다. 또한 김충선 역시 허황된 약속을 떠벌이는 자이오니 이 역시 마음에 두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선조는 답하지 않았고 유성룡은 작별을 고하고 어전(御殿)을 물러났다. 선조의 앞으로 강두명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도 모두 들었겠지? 어찌 생각하느냐?”
강두명은 머리를 조아렸다.
“영상의 보고를 그대로 믿으시옵니까?”
“그걸 너에게 묻는 것이다.”
“단언할 수는 없으나 이순신은 여전히 상감마마에게 위험한 인물이옵니다.”
선조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이순신이 짐의 상대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냐?”
왕의 용안에서 노기를 발견한 강두명은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