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하지만 이 사내가 지니고 있는 냉혹함을 알게 된다면 누구든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오표(吳豹)라 불렀으며 강두명이 그를 만난 지는 약 오 년이 넘었다. 조일전쟁 중에 강두명은 왜적들에게 포로로 붙들린 적이 있었다. 그때 오표를 만났다. 그는 강두명을 비롯한 네 명의 무리로 쇠사슬이 연결되어 함께 끌려 다녔다. 그때 오표는 탈옥을 위하여 다른 포로들을 무자비하게 살해 했다. 강두명은 지금도 왜 그가 자신의 목숨은 살려 두었는지 가끔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표는 자신을 죽이지 않고 함께 탈옥시켜 주었다. 어찌 보면 생명의 은인인 셈이었다.
“김충선이란 인물이 있어. 이번 이순신의 방면에 그 자가 백방으로 구명을 위해 노력했지. 혹시 자네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뜻밖에도 오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왜 장수 아닌가?”
“알고 있군.”
오표는 아주 잠깐 동안 허공에 시선을 던졌다.
“그 자를 우선 제거하라고 밀명을 내리시던가?”
그의 예리한 추측에 강두명은 수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확하이.”
오표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쉽지 않은 어명이군.”
그러나 강두명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로 말을 건넸다.
“자네가 해내지 못하는 일이 있다고는 난 믿지 않네. 귀신조차도 자네의 배짱과 칼 솜씨에 두 토막이 나고 말거야.”
“배짱이라는 건 좋은 말이고, 사실 비정하다고 표현해야겠지. 아니면 냉정한 살인귀(殺人鬼)라고나 할까? 강공이 내게 너무 후한 대접을 하는 게 아닌가?”
강두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난 자네를 경험했지 않은가.”
사실이었다. 조일전쟁(=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포로의 신분에서 탈출을 감행 했을 때 오표는 가공할 살인 능력을 발휘 했었다. 쇠사슬에 묶여있던 동료 죄수들은 물론이고 곳곳의 일본인 경비병들을 가차 없이 살해 하였고, 포로 당시에 학대 했던 일본인 무장을 일부러 침투하여 난자(亂刺)하는 대담함을 보여줬다.
“그때만 해도 혈기가 왕성하였지.”
오표는 과거의 행적에 관하여 그리 긴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강두명은 그런 무서운 독기에 무예를 소유하고 있던 오표를 다시 만난 것은 지난 병신년(丙申年) 구월이었다. 우연히 의금부(義禁府)의 병장기 선정과 관련하여 조사차 방문 했다가 거기서 오표와 마주친 것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의금부 소속의 나장(羅將)이 되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더욱 무르익은 것 같아.”
“그런가?”
“비록 선비 행색은 하고 있지만 자네의 진면목을 내가 보증할 수 있지.”
오표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오싹한 한기가 순간적으로 흘렀다.
“그 보증 덕분에 내가 조선의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런 내밀한 자리에까지 오른 게 아닌가.”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