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강두명은 본래 소인배들이 그러하듯이 강한 사람들에게 한없이 약하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지독할 정도로 강하게 군림했다. 그러나 오표에 대한 강두명의 태도는 결코 오만하지 않았다.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다.
“자네를 발굴한 것은 내게도 행운일세.”
“그리 생각해 준다니 고맙군.”
“이번 임무만 무사히 끝내게 된다면 자넨 내금위(內禁衛=임금을 측근에서 경호, 보필하는 부대)의 중요 직위에 오를 것이야. 지금이야 전쟁으로 인해서 내금위를 임시 폐지하였으나 이제 곧 복설(復設)될 것이니까 말일세.”
오표는 이미 강두명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리 강조하지 않아도 난 이미 폐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서했네. 김충선이라고 했던가? 그를 반드시 제거하겠어. 그러니 너무 염려 마시게.”
강두명은 계면쩍은 미소를 흘렸다.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신중하자는 것이지.”
오표의 예리한 눈매가 번뜩였다.
“목표가 이순신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어째서 김충선으로 바뀐 것인가?”
강두명은 오표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라 필부(匹夫)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신 모양일세.”
“이순신이 필부라?”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 일세.”
“의외로군.”
“나 역시 믿기 어려웠으나 서애 대감의 증언일세. 이순신이 새벽에 방문한 목적이 삼도수군통제사로의 복귀를 청탁하였다는군. 설마 그 충성스러운 영상이 어전에 거짓을 고했을 리가 있겠는가? 이순신이 영웅 행세를 포기한 것이지. 그 때문에 다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하하.....이순신은 생명력이 놀라워.”
"만일... 만일 말이다. 서애가 선조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면 어찌 되는 것이냐?“
주박(珠箔)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매우 고왔다. 이런 음색은 중원의 고유한 목소리와는 약간 달랐다. 변방의 사투리가 섞여 있는 것이 오히려 신비감을 더했다.
“유성룡이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오표는 반문했다. 그러나 상대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차분했다.
“유성룡이기 때문이다.”
오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영상은 선조의 사람이지 않습니까?”
“누구의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렇게 보여 질 뿐이다.”
오표는 그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는 강두명과 헤어져 바로 서문 밖의 골짜기에 존재하는 암자로 달려와 자신이 들었던 정보를 보고하고 있는 중이었다. 암자의 은밀한 요사채에 오표를 부리고 있는 사람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 은자(隱者)가 다시 중얼거렸다.
“선조는 의심이 많은 왕이다. 그는 비겁한 왕이고 인기가 없는 타락한 왕이다. 훌륭한 부하 장수를 질투하여 죽이려 하는 짓은 스스로 몰락의 길로 향하는 것이지. 누가 그런 왕을 자신의 주군으로 삼기 희망하겠느냐?”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