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반다시 입으시오. 우리 2천만 동포시여, 우리 손으로 맨든 갑싸고, 모양 조코도 튼튼한 녀름 옷감 해동져(海東苧)를 반다시 입으시오. 우리 손으로 맨든 옷감을 입어야만 우리도 남과 갓치 빗나게 살슈잇슴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5월 30일 중외일보에는 위와 같은 옷감 광고가 실렸습니다. 여기서 “해동저”는 비단의 하나인데 2천만 동포에게 서양에서 들어온 옷감이 아니라 국산 해동저를 쓰자고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를 한 것입니다. 당시 옷감들은 어떤 종류들이 있었을까요? 100여 년 전 서울 살던 소리꾼 이현익(李鉉翼)이 부르기 시작했다는 ‘비단타령’의 한 대목을 보면 우리나라와 중국의 각종 비단 이름을 생산지와 사용처, 특징별로 나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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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산 비단 "해동저" 광고(중외일보 1929년 5월 30일치), 비단 옷감(오른쪽) |
“중국에서 나온 소주포(蘇州布), 하늘에서 내려온 천진포(天震布), 씨가 성근 항래포, 특특한 세반저(細半苧), 한산모시 세경저, 조선모시 반도저, 동양저 서양저 하절천에 해동저로구나.”
그때는 일부 사람들 말고 모두가 한복을 입던 시절이어서 이렇게 비단의 종류가 많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광고를 낸 것을 보면 외국산 옷감의 수입으로 국산 옷감 업체들이 긴장한 모양입니다. 총독부 조사에 따르면 1913년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에 33개소의 조선인 직물업소가 있었는데 1920년대에 오면 공장화가 되면서 조선인들이 하던 작은 직물공장들은 문을 닫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제 비단 옷감 광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없는데 다 세월의 탓일까요?
* 참고로 비단도 원래 한자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1774년 황윤석(黃胤錫)이 쓴 백과사전 ≪이수신편(理藪新編)≫에 따르면 비단은 명주로 한 필 끊는다는 뜻인 ‘필단(匹段)’이 변한 말입니다. 필단이란 말에 피륙이란 뜻을 담기 위해 ‘실 사(絲) 변’을 더해 오늘의 비단(緋緞)이란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서정범의 ≪국어어원사전≫에 보면 비단의 순 우리말은 “깁”이지요. 토박이말이 한자말에게 주인 자리를 내준 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