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한성훈 기자] "봄에 능에 참배하려 할 때 마침 탄신을 맞이하였는데, 신주를 모셔두는 자리에 이르자마자 구슬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렸고, 향을 배향하며 울부짖으며 애통해하니 뭇 신하들이 감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정조임금은 그런 사람이었다. 뒤주에 갇혀 처참하게 죽은 아버지 무덤에만 가면 이렇게 피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했다. 현대에 부모에 대한 효성이 사라졌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들어나지만 우리는 이런 정조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일이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이귀영)은 “정조의 효성과 노인공경”이란 제목으로 정조의 효성 관련 전시회를 오는 9월 8일까지 열고 있다.
먼저 효성의 확산, ≪어정인서록(御定人瑞錄)≫의 펴냄이다. 대왕대비 김씨가 50세,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60세를 맞는 상서로운 해를 기념하기 위해 정조는 1794년(정조 18) 정월에 백관을 거느리고 이들에게 축하의 예를 올린 후, 그 해 6월까지 전국에서 장수하였거나 부부가 해로한 노인을 조사하여 벼슬과 상을 내렸다. 당시 벼슬 또는 상을 받은 노인의 수가 총 7만 5100여명이었다. 정조가 노인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은 부모에 대한 효성을 부모와 같은 연배의 사람들에게 확산하기 위해서였다.
▲ 영조의 계비 김씨의 오순(50)과 혜경궁 홍씨의 육순(60)을 기념하여 조정과 민간의 잔수한 노인들에게 산을 내린 과정을 기록한 채 ≪어정인서록(御定人瑞錄)≫
▲ ≪인서연운시(仁瑞聯韻시)≫ 중 "정조와 호위신하들의 근체시(近體詩) 모음
정조는 기로신(60세 이상의 신하)에게 명하여 전국의 장수자와 해로자의 인원수를 기록한 책을 펴내도록 하고 이 책의 이름을 ≪인서록(人瑞錄)≫이라고 짓도록 하였다.
1795년(정조 19)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년)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1735~1815년)의 회갑이자 정조가 즉위한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이러한 “동방 초유의 대경사(東方初有大慶)”를 맞아 정조는 그 해 윤2월에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 묘소 현륭원(顯隆園)에 행차하였다.
그해 현륭원 행차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혜경궁의 회갑잔치였다. 회갑잔치는 화성행궁의 정당인 봉수당(奉壽堂)에서 거행되었다. 회갑잔치 다음날에 정조는 낙남헌(洛南軒)에 몸소 나와 수원부의 노인 등을 초대한 경로잔치[양로연養老宴]를 베풀었다.
▲ 혜경궁 홍씨 회갑잔치 그림(왼쪽), 경로잔치 그림
▲ 정조의 수원 화성 행차 그림
▲ 화성 봉수당의혜경궁 회갑잔치에서 정조와 신하들이 지은 즉흥시
1776년(영조 52) 2월 당시 왕세손이던 정조는 영조에게 ≪승정원일기≫에 실린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삭제해달라고 상소를 올렸다. 상소내용을 들은 영조는 크게 감동하여 ≪승정원일기≫의 기사를 삭제토록 명하고, <세손에게 내리는 글(諭世孫書)>과 영조가 친히 쓴 ‘효성스러운 손자(孝孫)’란 글자를 새긴 은인(銀印, 은으로 만든 도장)을 만들어 왕세손 정조에게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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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가 세손 이산(정조)에게 내린 은인(銀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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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가 세손 이산에게 내린 글 |
1776년 3월 즉위 직후 정조는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을 추진한다.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莊獻)’으로 올리고 수은묘(垂恩廟・垂恩墓)로 칭해진 사도세자의 사당과 묘소 또한 각각 ‘경모궁(景慕宮)’과 ‘영우원(永祐園)’으로 승격시켰다. 또한, 경모궁과 영우원의 의식절차를 기록하고 의식에 쓰이는 여러 가지 도구나 물건에 대한 그림을 그린 ≪궁원의(宮園儀)≫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1789년(정조 13) 정치기반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정조는 기존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을 당시 명당으로 알려진 현재의 수원 화성으로 옮기고, 이름을 현륭원(顯隆園, 현 융릉)으로 고쳤다. 정조는 이례적으로 무덤 주변에 모란과 연꽃무늬 조각의 병풍석을 만들어 두르고 나무를 심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여 현륭원을 조성하였다. 현륭원은 고종 1899년(광무 3)에 융릉으로 다시 승격되었다.
이런 효성스러운 정조를 증명할 수 있는 갖가지 증거물들이 전시회에서 선보인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효도를 하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예전 정조임금이 부모를 위해 어떻게 했던가를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이 스스로 효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하면 좋을 일이다. 이번 주말에는 온 식구가 손을 잡고 고궁박물관에 나들이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