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수풀 사이 샘에서 발을 씻고서 (濯足林泉間)
흰 바위 위에 편하게 누웠네 (悠然臥白石)
새소리에 문득 꿈을 깨고 보니 (夢驚幽鳥聲)
저무는 앞산 가랑비에 젖고 있네 (細雨前山夕)“
위 시는 조선 경종 때 문인 임황(任璜)이 지은 “물가의 정자[水閣]”입니다. 무더운 여름 나무 그늘 아래 물가에서 탁족을 하고 널따란 바위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저물녘 숲으로 찾아드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 바라보니 안개 서린 앞산에서 가랑비가 오락가락합니다. 이런 선경에 취해 있으면 더위는 저 멀리 달아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이경윤의 <고사탁족도>, 등나무 아래의 피서객들(동아일보 1936년 7월 24일)
모레 토요일은 숨 막히는 더위의 시작인 초복이지요. 예전 선비들은 옷을 훌렁훌렁 벗어버릴 수 없기에 그저 조용히 탁족을 즐기며 마음을 씻었습니다. 그리곤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독서삼매경에 빠집니다. 그러다 죽부인을 껴안은 체 잠이 드는 것을 가장 좋은 피서법으로 알았지요. 원래 탁족(濯足)이란 말은 ’맹자’의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는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지금 도시 사람들은 에어컨 바람을 즐기다가 어디론가 시원한 피서지로 떠나기를 꿈꿉니다. 그러나 에어컨에 빠지다간 냉방병에 걸리고, 차가운 음식만 찾다간 뱃속이 탈이 날지도 모릅니다. 9세기 동산양개 선사가 더위를 피하려면 “네 자신이 더위가 되어라.”라고 했다지요. 내 자신 더위가 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초복엔 선비들처럼 탁족과 독서를 즐기는 것은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