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또 다른 방해자의 등장은 오표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평범한 살인이라고 판단했던 오표에게 이런 뜻하지 않은 대상들의 출몰은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빌어먹은, 운이 상당한 여자다?’
장예지의 입에서도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저하?”
그녀는 말을 하고는 황급히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상대방의 신분을 그리 발설해서는 안 되는 법이 아니던가. 하지만 너무 놀라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왕세자 광해군이었다. 그는 세자의 복장을 벗어 던지고 갓과 도포 차림이었다. 일국의 세자가 변복을 하고 나선 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으며 이렇게 장예지의 앞에 등장하는 것 또한 이변이었다.
“우리는 범상치 않은 인연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 되었구나.”
광해군은 기뻐하였다.
‘평범하지 않다.’
오표는 직감적으로 상대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음을 간파했다. 선비 복장의 광해군 배후에 기도가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저하라고 장예지가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가 광해군이란 말인가? 궁궐에 머무르지 않고 변복을 한 채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을 시찰이라도 나 온 것일까? 오표는 일부러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으며 곁눈질로 광해군을 훑어보았다.
‘무군사 시절 먼발치에서 본적이 있다. 그때보다도 더 야윈 거 같다.’
오표는 분조(分朝) 당시 광해군을 잠깐 감시했던 적이 있었다. 전란의 와중에서도 나이답지 않게 의연했던 왕세자였었다. 그런 세자가 장예지를 알고 있다는 것은 큰 의혹이었다.
“어인 행차이시옵니까?”
장예지는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광해군에게 물었다.
“아마도 그대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네엣?”
장예지의 놀란 눈동자를 마주보며 광해군은 악동처럼 씨익 웃었다.
“그리 놀라지 말게나. 사실은 서애 대감을 뵙고 오는 길이라네.”
광해군의 목소리도 매우 작아서 주변 사람들은 자세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광해군은 머쓱해 있는 구대일을 눈짓으로 물었다.
“뉘신가?”
장예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오표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며 광해군의 물음에 답했다.
“스승님의 친구 분이라 하십니다.”
장예지의 대꾸에 광해군과 구대일이 동시에 반응을 보였다.
“김충선의 친구?”
‘스승이라면...이 여인이 충선의 제자였단 말인가?’
광해군의 시선이 구대일에게 향했다.
“자헌대부 김충선의 지기시라고요?”
구대일이 머뭇거리며 장예지를 번갈아 보았다.
“이 분이 뉘신가?”
장예지는 난처했다. 함부로 발설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지 않는가.
“난 이혼이라고 하오.”
구대일은 머리가 빠른 위인이었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