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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향기, 마음의 향기

[한국문화 재발견] 향문화와 함께 건강한 삶을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꽃  

내가 그의 이름을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이렇게 김춘수는 꽃을 노래한다. 

 

   
▲ 난의 향기(뉴스툰)
 

세상의 향기 


그는 빛깔과 향기가 있는 꽃을 노래한다. 빛깔과 더불어 향기가 없으면 꽃이 아니란다. 이런 향기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어떤 의미일까? 어떤 사람은 살짝 스치는 여인의 머리에서 나는 향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샤넬 number9"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어머니의 젖냄새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커피향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아카시아향을 좋아한다. 


세상엔 참으로 향기가 많다. 꽃향기가 있는가 하면 풀향기가 있고, 그런가 하면 음악의 향기가 있다. 숲향기, 자연의 향기, 보랏빛 향기, 천년의 향기, 여름 향기, 고향의 향기, 흙의 향기, 절의 향기, 신록의 향기, 연인의 향기, 소주의 향기, 전통의 향기, 문학 향기, 입술의 향기, 아기의 향기, 먹향기, 누룽지 향기가 있는가 하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나눔의 향기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저녁 무렵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부엌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 때 어머니가 새까만 가마솥 뚜껑을 여시면 풍겨오는 구수한 밥냄새는 나를 한없이 행복하게 했다. 어머니 냄새와 함께 이 세상에 어떤 부러운 것도 없는 한 순간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소나무 장작 냄새가 좋았으며, 솔가지를 분질러 아궁이에 불을 때고 나면 손은 송진이 묻어 새까매졌지만 송진냄새는 싫지 않았었다. 또 어머니가 홍두깨로 옷을 두드릴 때 나는 무명 옷감 냄새도 아련히 기억이 나는 추억이다.

 

   

                                    ▲ 백제 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이렇게 세상엔 향의 천지이다. 향기가 없으면 악취라도 나는 것이 세상이다. 누가 악취를 좋아하랴. 사람들은 예부터 향과 함께 생활해왔다. 그 예는 경복궁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경복궁 안에는 1867년 고종이 ‘건청궁’ 남쪽에 못을 파 ‘향원지(香遠池)’라고 이름 지은 작은 연못이 있고, 못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향원정(香遠亭)’을 만날 수 있다. 또 정자로 이어지는 구름다리는 취향교(醉香橋)라고 해서 이곳은 온통 '향기'의 세상이다. 


옛 사람의 향생활
 


그런가 하면 우리 선조들은 선비가 사는 집을 '난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뜻의 난형지실(蘭馨之室)이라고 하였으며, 예로부터 선비들은 차를 마시며, 그림을 걸고, 꽃을 꽂는 일과 함께 운치 있는 4가지 일(4예:四藝)로 향을 피우고, 즐겼다고 한다. 심신수양의 방법으로 거처하는 방안에 향불을 피운다 하여, 분향묵좌(焚香默坐)’라는 말도 있었다.  


우리의 옛 여인들의 몸에선 항상 은은한 향이 풍겨 나왔고, 향수, 향로제조기술은 어진 부인의 자랑스러운 덕목이었다고 한다.  


신라의 진지왕은 도화녀와 침실에서 향을 사용했는데 그 향내가 이레 동안이나 지워지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아랍 지역에 사향과 침향을 수출하였고, 일본에도 용뇌향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향을 수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문헌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남녀노소가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향낭(향주머니)을 찼다고 한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에는 향을 끓는 물을 담아 옷에 향기를 쏘이는 박산로(博山爐)가 있었다. 또 고려의 귀부인들이 비단 향주머니 차기를 좋아했다고 하며, 흰모시로 자루를 만들어 그 속을 향초(香草)로 채운 자수 베개를 애용했다.  


이 외에도 고려인들은 ‘난탕(蘭湯)’이라 하여 난초를 우린 물로 목욕하거나 향수 물로 목욕함으로써 몸에서 향내를 발산시켰으며, 초에 난초 향유를 혼합함으로써 향내가 방안에 그윽하도록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일부 사람들은 향을 먹기도 했다고 추측된다. 향을 복용한 향낭(香娘;동정녀)을 부여안고 회춘(回春)를 기대했다.  


조선시대엔 부부가 잠자리에 들 때 사향을 두고 난향의 촛불을 켜두었다. 모든 여자들이 향주머니를 노리개로 찰 정도였다. 부모의 처소에 아침 문안을 드리러 갈 때는 반드시 향주머니를 차는 것이 법도로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옛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가장 즐겨 사용한 향은 사향이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사향이 우리나라 팔도 각지에서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비 의약품으로서 효용가치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사향은 응혈된 피를 용해시키는 작용을 하며, 토사곽란(토하고 설사하며, 배가 아픈 병)을 진정시킨다고 전해진다. 그뿐 아니라 흥분제로도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 온통 향이름뿐인 경복궁 향원정(사진작가 석송 이진우 제공)


난초에서 얻어지는 난향은 우울증을 풀어주고, 흥분을 진정시킨다고 한다. 향유병을 비롯하여 향로, 향꽂이, 향주머니, 향집, 향갑 등 향구(香具)들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들 향은 시전에서 판매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가정에서 스스로 만들어 썼다.  


그렇다면 예부터 향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했다고 보인다. 다시 말하면 향생활이야말로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데도 정말 좋은 한 방법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향기를 찾는 사람들' 박희준 대표는 선비의 향생활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인다. 


"우리가 여름철에 벌레를 쫓기 위해 피우는 모깃불도 이 향문화의 한 갈래이고, 추석에 먹는 솔잎 향기가 밴 송편과 이른 봄의 쑥과 한증막 속의 쑥냄새, 그리고 단오날 머리를 감는 창포물도 또한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향기의 하나였다. 


또 장롱 안에 향을 피워 향냄새를 옷에 배이게 하여 늘 옷에서 스며 나오는 향기를 즐기기도 하고, 옷을 손질하는 풀에 향료를 넣어 옷에서 절로 향기가 스며 나오게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향기를 잠자리에 끌어들이기도 하였는데, 국화로 베개를 만들어 사용하면 머리와 눈을 맑게 할 수 있고 탁한 기운을 제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향문화는 외국의 향과 향수에 밀려 촌스러운 것 또는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도대체 그 향기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의 향은 지난 왜정시대와 6.25 그리고 개발독재시대를 지나 정신보다는 물질의 시대에 살면서 잊히게 되었다. 향을 수출하고, 천년 뒤의 후손에게 물려줄 향을 묻던 고려인들의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기가 


   

                              ▲ 백제금동대향로 그림 (그림 이무성 작가)


한자의 ‘향(香)’이란 글자는 벼 ‘화(禾)’자에 날 ‘일(日)’자를 하고 있다. 벼가 익어 가는 냄 새를 향이라 하는 것이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기가 우러나온다. 이 말을 우리의 삶에 도입해 보자. 삶이 내면에 향기를 품고 사는지, 아니면 악취를 안고 사는지에 따라 그 사람 의 품격은 결정된다고 하겠다.  


내 몸에서도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을 즐겁게 하고, 또 동시에 내게 건강을 안겨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화학작용을 거쳐 추출된 서양식 향수보다는 한약재로 만든 우리의 천연향을 즐기는 슬기로움은 건강을 지켜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