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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뜻 깊은 광복군 창설일입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592]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에서 어렵게 투쟁하면서도 군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런데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를 본 중국 장개석 총통이 적극 임시정부를 지원해주자 김구 선생은 1934년 뤄양군관학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여 군사간부를 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중앙육군군관학교에서도 우리나라 청년들을 입교시켜 군사 인재의 양성에 힘썼습니다.  

임시정부는 여러 곳으로 피난처를 옮겨 다니는 상황에서 여의치 않았습니다만 마침내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중경) 가릉빈관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합니다. 광복군이 만들어지면서 광복군 총사령부가 설립되었고, 총사령관에는 지청천, 참모장에는 이범석 등이 임명되면서 광복군은 비로소 체계적인 군사조직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 중국 가릉빈관 앞에서 찍은 광복군총사령부 창설 기념 사진(1940. 9. 17)

이후 광복군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병력이 점차 늘어 한반도에 지하군을 조직, 파괴 공작을 진행시킬 계획을 수립합니다. 또 광복군은 연합군과 공동으로 태평양 방면에서 한국인 포로 재훈련과 파견사령부설치, 비행대 편성 등에 관한 작전 계획도 수립해 놓고 있었지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광복군은 이것을 기회로 1941년 12월 9일 드디어 일제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광복군은 이후 한미합동작전의 일환으로 한반도 상륙을 편성, 진격하려 했으나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작전은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분명한 우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군이었던 광복군을 미군정은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해방 이듬해 6월 해산됐습니다.

비록 국내로 진격해서 조선총독부의 항복은 받지 못했지만 광복군은 국군의 뿌리임은 물론 광복군이 있었기에 일제와 당당하게 싸울 수 있었음을 우리 모두 깊이 인정하고 기려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10월 1일 국군의 날을 9월 17일 광복군 창설의 날로 기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오늘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만든 광복군 창설 73돌, 참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