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도승지 영감은 무슨 일로 뵈려는 것입니까?”
“궁금하오?”
“헤헤, 뭐...조금......”
“내가 구주서의 질문에 반드시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 대해서 동의 하시오?”
강두명은 다소 싸늘한 어조로 승정원의 주서 직위에 올라있는 구대일에게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상대도 만만하지 않았다.
“용건이 분명하지 않으면 서리(書吏)를 불러 모시도록 하는 게 어떨까 해서요.”
강두명은 기분이 나빠졌다. 말하자면 용무를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승정원의 말단 부하에게 자신을 떠넘기겠다는 수작이 아닌가.
“구주서는 사헌부 지평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 같소.”
“강지평께서 승정원을 홀대 하시는 것은 아니고요?”
이 놈 봐라? 강두명은 제법 언중유골(言中有骨) 대꾸하는 구대일에 대해서 불쾌한 심사가 되었다.
“어명을 받들고 오는 길이요.”
임금의 명령이라면 그대로 기가 질리고 말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강두명이 던진 말이었다. 필경 기겁을 하고 몸을 도사릴 일이었다. 그런데 이 구대일이란 작자는 다른 평범한 관리들과는 달랐다.
“어명이라고 했소?”
“분명히.”
“크큭... 장난하시오? 어명이라면 전하께서 친히 도승지영감을 어전으로 부르셨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일개 사헌부 지평을 통하여 어명을 하달하시겠소? 아니 그렇소?”
아주 얄미운 놈이다. 강두명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와 동반했던 분이 뉘시었소? 상선영감이시오. 그렇다면 내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소?”
구대일은 잠시 눈을 껌뻑거렸다.
“아, 그랬었지요.”
“어서 도승지영감이 머무르시는 곳으로 갑시다. 난 사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소.”
“그렇다고 해서 대충 넘어갈 수는 없소이다. 용무도 모르고 안내했다가 혹시 불호령이라도 떨어지게 된다면 그건 누구를 탓할 수 있겠소?”
실로 우매한 척 하면서도 교묘한 인물이었다. 강두명은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이수사의 일이요... 이순신!”
구대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말하는 것이요? 시방?”
“그렇소. 이수사에 관한......”
강두명은 아차 싶었다. 그는 말문을 닫고 위압적인 눈빛으로 구대일을 훑어봤다.
“알았소. 이수사에 관한 내용이라 전해드리죠.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시오.”
구대일은 ‘의정전(義政殿)’이란 글귀가 새겨진 그리 웅장하지 않은 전각의 안으로 혼자 걸어 들어갔다. 강두명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으나 기다릴 수밖에 달리 방도는 없었다.
‘처음에는 어수룩해 보였는데 아주 능청스러운 놈이다. 공연히 이수사를 들먹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