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일제강점기 독립투사 가운데 김지섭 의사를 아시나요? 안동 출신 추강 김지섭 의사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고 중국으로 망명한 뒤 의열단에 가입해 상하이, 베이징에서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김 의사는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일제의 조선인 학살을 보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요인을 암살하기로 마음먹고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석탄운반선에 몸을 숨긴 김지섭 의사는 열흘간의 고된 항해 끝에 1923년 12월 30일 후쿠오카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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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간 목적이 제국의회에 참석하는 일본 총리 따위 요인을 처단하기 위해서였지만 “제국의회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에 따라 거사 계획을 바꿔 일왕의 궁성 곧 황거를 폭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24년 1월 5일 관광객 틈에 몸을 숨긴 채 궁성의 이중교(니주바시, 二重橋)를 향해 폭탄 3개를 던졌습니다. 습기를 머금은 폭탄의 불발로 거사는 실패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김 의사는 현장에서 붙잡혀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정에서 “조선 사람은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최후의 한 사람, 최후의 순간까지 항쟁할 것이다. 사형이 아니면 나를 무죄로 석방하라”고 외칩니다. 선생은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죽음 아니면 무죄를 주장했기에 구차하게 목숨을 구하지 않겠다.”라며 변호사의 상고를 말렸습니다. 김지섭 선생은 1928년 2월 20일 뇌일혈로 지바(千葉) 형무소 독방에서 순국했습니다. 김지섭 의사의 의거 장소 가까운 곳에는 이봉창 의사의 의거 장소인 사쿠라다몽도 있습니다. 일본 도쿄 여행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일왕의 집 황거. 한국인이라면 그 황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라 김지섭이봉창 의사 두 분의 의거를 새기고 나라 사랑을 다지고 와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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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섭 의사가 폭탄을 던진 도쿄 황거 앞의 이중교(니주바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