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한영 기자]
구순 나이 이르도록 / 청홍조각 잇댄 / 태극기 품에 안고
모진풍파 견뎌 온길 / 장강의 푸른 물 따라 / 떠돌던 수많은 나날
혀 깨물며/ 천지신명께 맹세한 건 / 오직 조국 광복의 꿈
멀고도 험한 가시밭 길 / 내딛는 걸음마다/태극의 괘 나침반 되어
기필코 이뤄낸 / 광복의 환희여
위는 노영재 (盧英哉, 1895. 7.10 ~ 1991.11.10) 애국지사를 기리며 이윤옥 시인이 쓴 <청홍 조각보에 새긴 태극기 꿈 ‘노영재’>라는 시 전문이다. 이와 같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일생을 찾아다니며 한분 한분에게 드리는 헌시를 쓰고 그 삶을 기록하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도서출판 얼레빗 》4권이 나왔다.
이윤옥 시인은 그간 우리 사회가 조명하지 못한 채 잊고 지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에 주목하여 1권에 20명씩 그들의 삶을 추적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번 4집에서 노영재 애국지사를 비롯하여, 노동자 권리 속에 숨겨 부른 독립의 노래 ‘고수복’, 훈춘에 곱게 핀 무궁화 꽃 ‘김숙경’, 제암리 비극을 온 몸으로 껴안은 ‘ 김씨부인’, 무등산 소녀회로 왜경을 떨게 한 ‘박옥련’ 등 20명 애국지사의 삶을 잔잔한 시와 일생으로 소개하고 있다.
젖먹이 어린 핏덩이 밀치고 / 남편 간곳을 대라던 순사 놈들 /끝내 다문 입
모진 고문으로도 열지 못했지 / 구류 열흘 만에 돌아온 집엔 / 엄마 찾다 숨진 아기
차디찬 주검 위로 / 차마 떠나지 못한 영혼 / 고추잠자리 되어 맴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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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옥련 애국지사(둘째줄 왼쪽 첫째)와 소녀회 회원들, 동아일보 1930년 9월 30일 기사 |
이 시는 중국 훈춘에서 남편 황병길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김숙경 애국지사를 기리는 시 “훈춘에 곱게 핀 무궁화 꽃 ‘김숙경’” 시의 일부다. 젖먹이 어린애를 둔 산모 김숙경 애국지사가 끌려 가 고문 받다 돌아오니 아이가 숨져 있고 차마 떠나지 못한 영혼이 잠자리가 되어 맴돈다고 시인은 읊조린다. 우리는 여기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일제 순사들의 야만적인 모습에 대한 분노와 함께 어린 영혼에 대한 슬픔이 왈칵 밀려온다.
이윤옥 시인은 “의사요 교육자인 제주 독립운동의 화신 ‘최정숙’”과 같이 제주 출신의 애국지사를 쓰기 위해 제주를 직접 찾아 가는가 하면 제암리 김씨부인을 위해서는 화성시의 제암리 교회 학살 현장으로 달려간다.
▲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임명애 애국지사의 판결문, 1919년 6월 3일
또한 <동포의 비분강개를 토해내던 여장부 ‘최형록’> 애국지사의 경우처럼 중국 내에서 활동한 분들의 삶을 찾아서 임시정부가 있던 상해는 물론 광주, 남경, 장사, 가흥, 유주, 토교, 중경 등을 직접 찾아가 현장을 확인하고 시를 써왔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알린 여성독립운동가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4권이 나옴으로써 모두 80명이 조명됐다.
현재 나라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은 애국지사는 남성이 13,403명이고 여성은 고작 234명에 머무른다.(2013년 12월 31일 현재) 그러나 여성독립운동가 234명조차 우리 국민이 기억하는 사람은 유관순 열사 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워 이윤옥 시인은 한 분이라도 더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불같은 삶을 소개하고자 뛰고 있으며 이번에 나온 《서간도에 들꽃 피다》4권에 고스란히 그분들의 이야기가 시와 각종 자료로 소개되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첫째 인물 선정이 어렵다. 쓰려고 하는 인물을 2배수로 뽑아 놓지만 결국 최종 인물은 2배수 밖의 인물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것은 자료 부족에서 생기는 것으로 한 분당 보통 7~8쪽을 할애하는데 어떤 경우는 1쪽도 채울 수 없는 분이 있다. 설사 자료가 있다 해도 헌시를 써야 하기에 책상에서 짜 낼 수는 없는 일이라 현장을 가보게 되는데 이 경우 경비와 시간이 많이 든다. - 이번 4권에서 인상에 남는 여성독립운동가는? 한분 한분 모두 가슴 속에 여운이 남아 있지만 특히 22살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고문으로 숨진 고수복 애국지사, 초임 교사로 부임해 채 1년을 못 채우고 만세운동 끝에 숨져간 26살의 임봉선 애국지사, 독립운동한다고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 산채로 집어 던져진 차경신 애국지사의 삶 등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이런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하지 않고 방치한다는 것은 후손으로서 부끄러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 한분 한분 시작업이 쉽지 많은 않을 텐데 시에 대한 구상은 어떻게 하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한 사람이 독립운동한 사실을 시로 표현한다는 게 그리 녹녹하지는 않다. 여러 번 퇴고를 거치고 그리고도 맘에 내키지 않으면 애국지사가 살았거나 흔적이 있는 곳엘 가보지만 그래도 감이 오지 않을 때는 시상이 떠오를 때까지 덮어두고 지내다가 다시 꺼내 보는 등 애로가 많다. 그러나 그때마다 애국지사를 떠 올리며 위안을 받는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물론 계속 쓸 것이다. 현재 234명(2013.12.31)이 나라에서 공훈을 인정받았다. 이 숫자는 새로 발굴이 되면 더 늘어날 것이다. 이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아 그만둘까 하다가도 책 1권에 20명을 마감하고 나면 남겨진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나도 써줘야지, 나는 어쩔 텐가?” 하는 소리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아 이 작업을 중단 할 수 없다. - 사회에 바라는 점은? 널리 이 책을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분들의 삶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늘 잊지 않는 우리 겨레였으면 한다. 특히 책을 펴내는데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다.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지인들에게 인쇄비를 보태달라고 하고 있으니 늘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국가보훈처 문헌발간 지원프로그램에 해마다 넣어보고 있지만 번번이 낭패를 맛보고 있다. 무슨 좋은 대책이 있는지 독자들이 지혜를 모아주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