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남을 사랑한다는 것
아니 나를 사랑한다는 것
남을 용서한다는 것
아니 나를 용서한다는 것 모두
낙죽한 새 한 마리 하늘로 날려보내고
물이나 한잔 마시는 일이지
숯불에 벌겋게 평생을 달군
날카로운 인두로
아직도 지져야 할 가슴이 남아 있다면
아직도 지져버려야 할 상처가 남아 있다면”
▲ 불에 인두를 달구어 낙죽을 하는 모습(문화재청 제공)
위 시는 정호승 시인의 <낙죽> 일부입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낙죽장(烙竹匠)’은 대나무 따위에 인두로 지져서 무늬·그림·글씨를 그려 새기는 전통적 기법의 장인이지요. 나무 말고 종이·비단·가죽에도 인두를 달구어서 낙죽과 같이 새기는 기법이 있어, 넓게는 낙화(烙畵), 낙필(落筆)이라고도 합니다.
낙죽하는 작업을 ‘낙(烙) 놓는다’고 하거나 ‘낙질한다’ 또는 ‘낙지진다’라고 하는데 이때 쓰는 도구는 인두와 화로뿐이며 인두는 바느질 인두와는 형태가 다른 ㄱ자 모양이고 안으로 굽어서 인두의 몸체는 앵무새 부리처럼 두툼하게 생겼으나 끝이 뾰족하지요. 인두는 두 개를 준비하여 화로에 꽂아 두고 번갈아 사용하는데, 이는 알맞은 열기(熱氣)를 계속 유지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두가 알맞게 뜨겁도록 하는 일과 알맞게 뜨거워진 인두를 써서 낙죽하는 일은 오랜 세월 숙련과 경험에 의한 것이지요.
낙죽은 쥘부채(합죽선)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쓰이는 두꺼운 대나무살에 가장 많이 쓰이는데 여기엔 나비무늬가 많지만 더러는 박쥐무늬도 보입니다. 그밖에 화살대·침통·칼자루·병풍·담뱃대·대나무필통 따위에도 낙죽으로 그림을 그려넣었습니다. 차가운 대나무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던 낙죽장의 솜씨도 이젠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어 아쉽습니다.